경계위에 선 마음들

[ 픽션, 이야기속으로 ] 10

by 정원에

오후 2시, 백화점 정문의 분수대는 화려한 물줄기를 쏘아 올리며 무심한 활기를 뿜어낸다. 그 인공적인 활기 앞에 서 있는 두 세계가 있다.

그녀의 시선은 낮고 불안하다. 화려한 쇼핑백을 든 인파 사이에서 그녀는 홀로 정지된 섬 같다. 손에 쥔 최신형 휴대폰은 그녀에게 ‘기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할 ‘교환권’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휴대폰 주인과 그 옆의 제복 입은 경비요원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분수대의 물방울처럼 잘게 부서집니다.

‘감사 인사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죄를 추궁받으러 온 것인가.’ 그녀의 마음속엔 수치심이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생존이라는 거친 암초에 걸려 멈춥니다.


우리의 시선은 당혹감에서 서글픔으로 옮겨 간다. 처음엔 사례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에 방어적인 벽을 세웠다. 경비요원을 동행한 건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분수대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그녀의 낡은 신발 코와, 당황해서 연신 매만지는 헤진 가방 끈을 본 순간, 우리가 세운 벽은 힘없이 허물어진다. ‘저 여자가 훔치고 싶었던 건 휴대폰이 아니라, 배고픔을 잊게 할 한 끼의 온기였을까.’

그녀가 요구한 음식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해온 누군가가 내미는 가장 비굴하고도 절박한 악수였다.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은 그녀의 깊게 파인 주름을 가난이라는 문장으로 선명하게 읽어내린다. 경비요원의 번쩍이는 배지는 법과 질서를 상징하지만, 그 차가운 금속 광택 앞에서 그녀는 자신이 주운 것이 타인의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돈 대신 음식을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마 돈을 요구하기엔 남은 양심이 따가워 슬쩍 비껴간 가련한 타협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깨달았다. 삶은 때로 누군가를 백화점 안의 쇼퍼(Shopper)가 아니라, 그 입구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를 맞으며 서 있는 방랑객으로 만든다는 것을.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는다. 법적인 정의와 인간적인 연민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경비요원의 존재에 당황해하던 그녀의 뒷모습에서 우리가 본 것은 범죄자의 그늘이 아니라, 길을 잃은 이웃의 초상이다. 우리는 경비요원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저희도 마침 배가 고픈데, 같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어떠세요?> 비난 대신 건네는 식사 한 끼는,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가장 부드러운 햇살이 된다.


라이팅 레시피6.jpg


금, 토 연재
이전 09화의자와 경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