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klimt-avenue schloss kammer park
초등학교 미술 시간, 나는 항상 주변을 살피던 학생이었다. 찰흙 놀이를 할 때도, 20년 후 미래를 그리는 날에도, 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날에도 나는 눈치를 봤다. 계속 눈치를 보니까 목이 아팠다. 내 책상을 보는 시간보다 옆에 친구 책상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저 친구는 엄청 잘하고 있네.’
‘나도 저 친구처럼 해볼까?’
정답이 필요했다. 이 시간을 잘 넘길 수 있는 정답. 선생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정답. 친구들의 주 목을 받는 정답. 그 정답이 나한테는 없고, 짝꿍한테는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도 주변 을 살피면서, 훔쳐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날에도.
다시 지금, 나는 정답을 찾고 있다. SNS에 올라오는 주변 친구들의 게시글을 보며 정답을 찾고 있 다.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정답을 찾고 있다. 내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정답.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정답. 일단, 내가 가진 것은 작아 보이고 주변 사람들의 그것이 그렇게 커 보이고. 그것이 내가 필요한 정답이 아닌가 고민한다.
원근, 가까이 있는 것은 커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아 보인다. 말 그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는 말은 아닌 것. 그뿐이다. 클림트의 Avenue schloss kammer park를 보면 거리 좌 우로 펼쳐진 나무들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나무는 무척 커 보이고, 멀리 있는 나무는 작아 보이기 도 한다. 하지만 그 나무들의 크기가 실제로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좌우로 펼쳐진 나 무들은 그 모습도 제멋대로다.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똑같이 생긴 나무가 없다.
어쩌면 나는 원근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당장 내 눈앞을 가득 채우는 주변 사람들의 정 답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커 보이는 원근의 함정. 각각 다르게 생긴 나무들처럼 우리가 모두 각자의 모습으로 정답들을 품고 있다고. 멀리 떨어진 나무가 작아 보여도. 결코, 정말 작은 것이 아니라고. 크기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그림의 중앙 노란 집의 창문 너머 여인의 보석 같은 미소를 보라고. 클림트가 그림 속에서 얘기해오는 것만 같다.
가장 작지만 가장 빛나는 그것을 보라고. 너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그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