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 세계테마‘정원’기행
‘이길 승(勝)’. 이기다, 뛰어나다, 승리 등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
‘이을 승(承)’. ‘잇다’, ‘계승하다’, ‘받다’, ‘받들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위대한 유산입니다만, ‘승’정원(庭園)일기는 소박하고, 소심하고, 게으른 정원사의 미루고 미루던 정원 이야기를 겨우 기록하는 일기입니다.
어떤 한자를 쓸지 고민하다 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기고, 뛰어나고 싶은 욕심도 많고 정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게으른 정원사의 묵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텅 빈 공간이 풍성한 정원으로 채워지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쉬이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늘 정원에서 뵙겠습니다.
EBS에서 방송 중인 여행 다큐 ‘세계테마기행’은 의외로 즐겨 보는 사람이 많다.
EBS에서는 2014년부터 공모를 통해 일반 시청자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여행에 목마른 나 또한 ‘정원’을 주제로 응모했다.
응모할 때 처음 기획은 수목원에서 일하는 정원사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영국정원을 여행하는 것이 주된 골격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국 PD들에게 자랑스럽게(?) 기획안이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았다.
거짓말처럼 그들도 같은 의견을 내게 주었지만, 서운하게도 “채택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말을 들었다.
PD들 입장에서 남자 2명이 출연해 ‘정원’을 소개하는 구성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여행하는 모습은 밝은 분위기로 연출하기가 쉽지 않고 ‘정원’이라는 공간적 배경 또한 여행 다큐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끌어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도 PD들에게 정원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라 한다.
야심 찬 기획이 제출되기도 전에 상처를 입어 힘이 빠졌다.
약간의 분노를 담아
라고 물어보니 거짓말처럼 90% 이상 그 기획은 채택될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정원 이야기를 여행 다큐로 담아내는 데 있어 적합성 여부를 떠나 모두가 그 기획은 궁금해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말 사하라 사막에 정원이 있을지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청자 여행 큐레이터에 선정되어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정원’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년 뒤 다시 서아프리카 세네갈과 감비아로 여행을 한 번 더 갈 기회가 생겼지만 역시 메인 테마는 ‘정원’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원사의 눈에는 여행지 곳곳이 정원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에도 위기가 찾아왔는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예전 방송을 테마별로 재편집해서 송출하고 있다. 주요 테마는 ‘먹거리’, ‘축제’, ‘소수민족’, ‘장거리 루트’, ‘유라시아 견문록’ 등이다. 이번에도 ‘정원’이라는 테마로 각 나라별 여행기가 방송되길 기대했지만 아직 계획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공중파에서 간간이 ‘정원’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고 반응도 나쁘지 않다.
향후 기회가 닿는다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정원 채널에서도 해외의 정원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꼭 기획하고 싶다.
욕심을 더 낸다면 ‘정원’이라는 콘텐츠로 PD들이 ‘먹방’이나 ‘맛집 탐방’에 버금가는 관심으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언제가 ‘세계테마정원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기획된다면 꼭 첫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시청자와 함께하는 세계테마기행 ‘사하라의 정원, 튀니지로 간 두 남자’ 편 오프닝 화면(사진=방송화면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