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다. 이 새벽에 누구람. 새벽 3시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시차를 모르는 보이스피싱인가?
무시하고 다시 자려는데 잠을 잘 수 없게 끈질기게 전화가 울린다. 짜증이 나서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경찰서란다. 뭐야 정말, 보이스피싱이네.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갑자기 생각지 못한 이름을 듣게 되었다.
“박종수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지요? 박종수 씨가 경찰서에 있습니다.”
박종수 씨.. 뭐? 박종수 씨? 아빠? 잠결에 반쯤 감겨있던 눈이 커다래졌다,
“아빠가 경찰서에 있다고요? 제가 딸이에요. 지금 어디로 가면 되나요? 바로 가겠습니다.”
캄캄한 방 안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남편은 골목골목 빠르게 차를 몰았다. 급히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른편 의자, 하얀 솜털로 덮여 있는 할미꽃 같이 하얀 고개가 한쪽으로 축 꺾인 채, 파출소의 밝은 형광등과 소란스러움에도 달게도 잠들어있다. 아빠다.
그는 집에서 버스정거장으로 4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새벽, 백발이 성성한 채 얇은 메리야스 차림으로 혼자 걷고 있는 한 노인을 이상하게 여긴 어떤 분이 신고를 해주었다.
그는 새벽에 혼자 깨어나 화장실을 찾다가 현관문을 열었을 것이다.
계단을 몇 개 걸어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와 4월 새벽의 컴컴한 공기를 맞닥뜨렸다. 구불구불 작은 골목들을 지나 큰길을 만나 다시 걷고, 걸었다. 그는 혼란한 어둠 속에서 집에 가려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에.
그는 밖에 있어도 집에 있어도 집에 가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해남 양도암. 거기가 자신의 집이라고 말하며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가 이미 10년도 더 넘었다고 말해주면
“그랬어?”
하고 잠시 슬퍼했다가 10분도 채 안되어서 너무 늦지 않게 집에 가야 한다며 다시 채비를 했다.
소년의 태를 다 벗지 못한 그가 홀로 서울에 올라와 머물렀었던 작은 자취 집도, 못난 남편이 되어 처음으로 꾸렸던 신혼집도, 세 딸을 낳아 아빠의 역할을 해내며 살았던 그 집들은, 그에게는 진짜 집이 아니었다.
그는 결혼한 기억도, 자식을 낳은 기억도 잊었다. 옛 사진을 보여주며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자신은 결혼한 적도 없고 자식을 낳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는 결코 잊지 않았다.
어디에 있어도 그의 머리와 마음을 붙잡고 있는 집은 부모님이 함께했던 그곳뿐이었다. 그의 영혼이 필사적으로 새겨둔 나의 집.
아빠는 어디에 눕건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잠시 외박하는 손님의 마음으로 잠들었겠지. 내일은 부모님을 보러 집에 꼭 가봐야지 다짐하면서.
“아빠, 아빠. 나야. 일어나 봐, 아빠.”
경찰서 의자 위에 자고 있는 아빠를 깨웠다. 내 카디건을 벗어서 아빠에게 입혔더니 따뜻하다며 바보같이 웃는다.
방에 아빠를 누이고 나서 잠잠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빠의 헤매이는 마음이 잠재워지길 바라는 새벽.
-2021년 4월 이야기
*대문사진 출처 : 연합뉴스 천기철 사진작가 '동백꽃 핀 두륜산 양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