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에게 차마 묻지 못했던 것

by 뭉클


‘도원 극장’. 영화 한 편을 보러 가면 두 편을 볼 수 있던, 동시상영이 되는 동네의 작은 극장.

상영 중이라는 빨간 글씨 아래, 어딘가 비슷한 구석은 있지만 자세히 보아야 주인공을 알아맞출 수 있는, 그림으로 그려진 영화 간판이 걸려있었다.

여름방학이면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데리고 극장에 갔다. 심형래 아저씨가 나오는 우뢰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보기 위해서였다. 성우 아줌마가 우리에게 "영구야"를 부르라고 하면, 우리는 큰 목소리로 영구를 불렀다. 그럼 영구가 대문을 열고 “영구 없다.”를 외치며 영화는 시작했다. 오프닝은 항상 같았다. 그때는 그게 참 재미있었다. 엄마와의 영화 관람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 ‘영구와 땡칠이’ 영화를 보러 간 이후로는 부모님과 같이 극장에 간 기억이 없다.


안 좋았던 부모님 사이가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극장이든 어디든 갈만한 여유가 우리 집엔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아빠를, 나를 떠났다. 엄마가 떠나고 남겨진 아빠와 딸들은 온갖 것이 다 결핍되어 있었다. 국도 반찬도, 잘 개어진 수건도, 아빠가 빼다가 써서 반 밖에 없는 월세집 보증금도. 그중에서 제일 없어 보였던 건 세 딸을 혼자 키워야 했던 메리야스 입은 아빠의 등짝이었다. 윤기 없는 홀아비의 등짝.


집에 가면 엄마가 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일상을 누리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랑 매일 같이 투닥거리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엄마가 세탁해준 교복을 입고, 엄마랑 쇼핑 가고, 엄마랑 데이트했다는 친구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당시에는 그게 부럽다는 말을 솔직하게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으니 정말, 말도 못 하게 부러웠던 거다.


학창 시절에는, 없는 엄마에 온통 마음을 쏟아서 같이 살고 있는 아빠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다. 아빠랑 어딜 같이 간다던지, 무얼 같이 하고 싶다던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 엄마 탓만은 아니었다. 커서는 친구들, 선배, 영양가 없는 소개팅 남, 그중에 남친이 된 그와는 뻔질나게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아빠는 또 잊었으니깐.


서른이 넘어서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아빠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아빠와 처음으로 같이 극장에 갔다.

- 왜 이 세상의 많은 자식들은 제 부모님이 아프고서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걸까. 되게, 마음 아프게 말이다.


아빠와 같이 본 영화는 ‘명량’이었다. 최민식 아저씨가 이순신 역할을 멋들어지게 소화한 영화. 영화를 보면서 화면도 크고, 전쟁 신도 많다 보니 커다란 소리에 아빠가 혼란스러울까 봐 아빠 손을 붙잡았다. 따듯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평온한 아빠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자니, 아픈 아빠가 왠지 더 와닿아 목이 메어왔다.


시각적 장면보다, 촉감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거였다. 그 순간 아빠의 따뜻한 손의 촉감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남아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빠의 일기장 속에서 이날 나와 극장에 갔던 일을 기록해 둔 걸 발견했다.



2014.8.22.

신데렐라 아줌마가 반찬을 (김치) 준다고 오라 해서 가서 1시간 이상 놀다 반찬 갖이고 집에 왔는데 둘째가 영화관에 갖아고 해서 딸과 함께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갔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였다.

맑은 정신으로 시청하고 딸하고 집에 왔다. 안타까운 건 영화 제목을 기억할 수 없는 것. 딸한태 묻고 싶었지만 걱정을 주는거 같아서 멈췄다.

나는 왜? 나는 몇시간 밖에 안된걸 기억 못할까.

자꾸 훈련해봐야겠다. 안타깝다.


아빠 극장 수정.png 일기 속 저의 실명은 가렸습니다.


몰랐다. 아빠가 영화 제목을 기억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빠가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차마 나에게 묻지 못했다는 것도.

자신의 치매 증세와, 이로 인한 딸들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예민하게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노후된 형광등처럼 깜박이는 자신을 스스로 책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치매로 인해 무뎌질 거라 생각했던 아빠의 생각과 감정들은, 그렇게 그렁그렁 살아있었다.


차마 자식에게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들을 홀로 삭혀내며, 제 마음 펴보일 이 없이 일기장에만 써 내렸다.

내가 아빠의 일기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을 거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무심코 지나쳐버린 아빠의 마음이 있었을까.


극장에서 잡았던 아빠의 손이 그토록 따뜻했던 건, 제 아픔보다 자식을 걱정했던 아빠의 붉은 마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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