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한쪽 몸이 마비되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빠는 비실비실 몇 걸음 걷다 주저앉았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요양원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배를 이곳저곳 눌러봤으나 아빠는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치매라는 병이 무서운 건 치매로 인해 자신의 몸을 살펴주고 대처하는 뇌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통증을 이해하지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곁에서 세심히 살펴주는 사람이 없다면 병을 알아차릴 수도 없고, 더디게 병을 발견하더라도 치료행위를 이해하지 못해 치료도 쉽지가 않다.
요양원에서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분명 한 사람을 주저앉힐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날 바로 외출을 신청하고 내과에 모시고 갔더니 장폐색 증세가 보인다고 했다.
요양원 측에 아빠가 먹고 있는 약을 확인시켜 달라고 했다. 집에 있을 때도 항정신병약 부작용으로 복통이 발생했던 적이 있어 입소 시부터 요양원에 미리 공유를 하고 주의를 기울여달라 말해왔다.
“왜 처방전이 달라진 거예요? 요양원 주치의 선생님이 기존 처방전이랑 동일하게 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약 명칭은 달라 보이지만, 약 성분은 동일한 거예요.”
“아니, 명칭만 달라진 게 아니라 약 용량도 달라졌잖아요. 보호자에게 말도 안 하고 마음대로 약을 바꾸는 게 말이 돼요?”
내가 가져다준 처방전도 요양원에서 소개해준 병원에서 몇 차례 추가 처방을 받아온 것이었다. 아빠 때문에 주변 분들이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힘들다고 하니 그 요구대로 약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양원 매니저는 의사 선생님과 직접 통화를 하며 증세를 설명하기도 했다. 3-4번 정도 병원에서 추가 처방을 받아다 준 이후로는 요양원 주치의를 통해 처방전과 동일하게 약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부풀어 오른 배를 보고 식사를 잘해서 살이 찐 것이라고 말해왔던 요양원은 처방전을 들이밀며 조목조목 따져도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 이곳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되는 금액을 빼고 개인이 한달 이용료로 180만원을 부담해야 했던 자칭 프리미엄 요양원이었다. 다인실 없이 1인실로 구성이 되어있고 유닛형 구조로 다른 요양원보다 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인원이 적었다. 요양사가 1인당 돌보는 인원이 적다는 광고에, 내 월급 대부분이 요양원 비용으로 들어가도 이곳을 택했다. 하지만 아빠 방의 화장실 휴지를 모두 치워서 걸려있는 수건으로 뒤처리를 하고 그 수건으로 아빠가 얼굴을 닦는 꼴을 이전의 요양원과 마찬가지로 보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약 부작용에 대해서 너무나 무신경했다.
또 다른 요양원을 찾아 헤맸다. 한편 아빠의 폭력성과 배회증상을 부작용 없이 낮춰줄 약을 찾기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신경과보다 정신과에 치매로 나타나는 이상 증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약의 종류가 더 많다는 정보를 보고 정신과를 찾았다. 기존에 부작용이 있던 약들은 빼고 다른 약들을 시도하며 용량을 조절해 갔다. 병원에서는 약 용량을 쉽게 늘려주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반응을 보며 서서히 늘려간다.
동생이 치매 보호자들이 소통하는 카페에서 알게 된 요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 요양원 측에서는 그간 이야기를 듣고는 본인의 요양원은 약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다섯 번째 요양원, 새로운 요양원으로 옮긴 지 3개월 되었을 때였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아빠는 고개가 한쪽 어깨와 닿을 듯 기울고 중풍에 걸린 사람처럼 겨우 걸었다. 양쪽 발은 퉁퉁 부어서 살갗을 누르면 찰흙처럼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고작 3개월 만이었다. 병원에서는 뇌, 허리 검사 등을 진행했으나 마비가 생길 만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뇌신경과에서는 파킨슨을 의심하며 관련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퇴원 후 집 근처 종합병원에서 치매로 유명하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아빠의 모습과 처방전을 쭉 살펴보고 의사 선생님이 입을 뗐다.
“약 부작용이에요.”
“다른 병원에서는 파킨슨일 수도 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의사 선생님은 처방전을 짚으며 말했다.
“이 약 부작용이 파킨슨 증세처럼 나타나요.”
새로운 요양원도 마찬가지였다. 요양원 원장들은 같은 학원에서 배웠는지 똑같은 방법으로 보호자 몰래 약을 늘렸다. 그리고 보호자의 클레임에 대처하는 멘트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똑같았다. 3개월 만에 한쪽 몸이 갑자기 마비된 아버지를 보고도 그랬다. 예의상이나마 사과 한마디 없었다.
지인의 할머니가 요양원 입소한 지 한 달 만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인가 보다 넘기고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이젠 알 것 같다.
수십 년간 제각기 다른 곡조로 살아왔던 노인들의 생은 규칙적이고 일률적인 노래로 편곡되어 하나의 리듬에 맞춰진다. 잔잔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잔다. 질척한 기저귀조차 정해진 시간에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 수면제, 항정신병 약물 등이 투여된다.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 약을 많이 필요로 하고 또 이를 견디지 못하는 노인들은 요양원에 가면 그렇게 생을 잃는다.
다섯 군데의 요양원을 거치며 아빠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요양원의 운영 방침, 케어는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아빠와 같은 환자에게 약을 적게 쓰면서 치매 환자를 세심하게 케어해 줄 수 있는 요양원을 대한민국에서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퇴원하고 다음거처를 정해야 했을 때, 그럼에도 나는 동생에게 또다시 요양원을 알아보자고 했다.
아빠는 한시도 혼자 있을 수가 없는데 내일도 나는 출근을 해야 했고, 자영업을 하는 동생도 더 이상 일을 쉴 수 없었다. 결혼한 나를 대신해서, 그리고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생은 나 대신 많은 짐을 짊어져왔다. 오랜 기간 치매 간병을 하며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다시 요양원에 가면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낙이 없는 여생,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아빠와 우리는 해결책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대문사진 출처 : 이미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