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더’라는 영화를 보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안소니’를 딸 ‘앤’이 돌보는 이야기였다. 여느 치매 환자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더파더에서는 치매환자가 겪고 있는 혼돈을 가족의 시선이 아닌 환자의 시선에서 보여준다는 점이 독특했다. 영화는 안소니가 보고 듣는 환상, 뒤틀려버린 사실, 뒤죽박죽 한 기억의 장면들을 두서없이 보여준다. 안소니와 같은 시선에 서게 된 관객들은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함께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비로소 치매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정말이야, 앤.”
안소니는 딸을 붙잡고 하소연한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뱅뱅 어지럽게 돌고 있을 뿐이다. 그가 느꼈을 당혹감과 외로움, 나의 아버지도 느꼈을 그 심정을 보며 나는 끅끅대며 울었다.
“더 늦기 전에 집에 가야지.”
“여기가 아빠 집이야. 여기 써놓은 거 봐봐. 여기는 박종수 집입니다. 딸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어머니가 아파서 내가 지금 집에 가봐야 돼.”
“아빠, 할머니 돌아 가신지 10년도 더 됐잖아”
“돌아가셨어? 이런. 그런데 내가 한 번도 못 가봤어.”
“아니야. 아빠가 할머니 장례도 다 치르고 했잖아.”
......
몇 분 후 대화는 도돌이표다.
“집에 가야 한다니깐! 왜 이래? 놔둬!”
현관문을 발로 차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쇳소리를 내던 아버지는, 문을 가로막고 있는 날 밀치고 기어코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뒤를 씩씩대며 따라갔다. 아버지는 향방 없는 길을 무작정 걸었다. 더운 날씨에 두 개 겹쳐 입은 바지는 엉덩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카라 티셔츠도 두 개, 마이까지 껴입은 고집스러운 뒷모습이 너무 미웠다. 알아서 한번 가봐 어디, 화가 나서 손도 잡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골목길을 지나 낯선 큰 길이 나오면 머뭇거리다 내가 있는지 뒤돌아봤다.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하면 안심하고 다시 걸었다.
"바보같이, 혼자 가지도 못할 거면서". 한참을 걷다 다리가 아프고 불안해지면 그제야 내게 말을 붙였다. 날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또 시작이었다.
밥 먹은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밥 먹은 일이 없다고 우겨대는 것, 한밤중에 냉장고를 다 들쑤셔 놓는 일, 전기장판을 켜놓고 덥다며 선풍기를 강풍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는 일, 화장실을 가면 될 걸 방 휴지통이나 옷장에 오줌을 싸놓는 일, 혼잣말로 욕을 중얼중얼하는 것, 옷이나 신발을 절대 벗지 않고 쉰내를 풀풀 풍기면서 목욕하기를 극렬하게 거부하는 것도, 다 지긋지긋했다. 아버지가 너무 밉고 꼴도 보기 싫었다.
먼저 치매 간병을 경험한 분들은 당시 나에게 아빠를 붙들고 싸우지 말라고, 그냥 아빠가 하는 말을 인정해 주라고 했다. 머리론 알지만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하는 아버지를 견디는 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다른 병에 걸리면 그 병을 미워하는데, 치매는 치매에 걸린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고.
아버지는 어느 시점까지 겉으로는 말짱해 보였다. 치매는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없었다. 아파 죽겠다를 외칠 수 있는 다른 병들과는 달랐다. 아버지의 뇌는 까마득한 어둠으로 침잠해 가면서도 직접 표현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난 더 아버지를 미워했는지 모른다. 안색도 체중도 태연해서. 태연한 얼굴로 날 괴롭히는 가지가지 행동을 하는 게. 하지만 치매는 아버지의 기억, 감각기관, 신체활동을 착실하게 부스러트려가고 있었다.
치매로 인해 기억을 잃는다는 건 단지 기억만 없어지고 마는 게 아니었다. 계절, 날짜, 시간, 나이, 대통령, 나라, 가족, 친구, 자신의 이름, 5분 전에 했던 말, 단어, 칫솔질, 코 푸는 방법, 머리에 붙은 껌을 떼야하는 이유, 인형 눈은 먹지 못한다는 것,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 등. 치매는 이 모든 것들을 - 뺏기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 남김없이 탈탈 털어갔다.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의 방법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관계와 사람을, 인생에서 잊으면 안 될 일들을 잊어버렸다. 식물이 뿌리째 뽑혀서 파들파들 떨며 신문지 위에 뉘어진 모습처럼 아버지는 자신을 지탱해 온 허연 뿌리들이 죄 뽑힌 채, 전동 침대 위에 눕혀졌다.
집에서도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 아버지는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 않았다. 나는 현실에 있었고 아버지는 몇 개 안 남은 기억 속 과거 어딘가쯤에 있었다. 왜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과거로부터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싹 사라졌다. 아버지는 맥락 없이 덩그러니 혼자 놓였다. 아버지에게 나는 딸이 아닌 그저 아는 누이일 때가 많았다. 아무리 여기가 집이야를 외쳐본들 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었다.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아무리 타이르고 화를 내고 눈물로 호소를 해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치매는 아버지가 있는 세상을 낯선 곳으로 바꾸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통 모르겠어. 무슨 일인지 알아요?”
홀로 갇힌 세상에서 결국 울음을 터트린 안소니처럼 아버지도 저렇게 절박한 심정이었을까.
차라리 아버지가 안소니처럼 저렇게 울었다면, 내가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는 일도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혼자 두는 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내 아버지는 우는 방법조차 까먹었다.
정말로 밉다. 이 지랄 맞은 치매가 정말로 밉다.
*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보호자들이 더파더 영화를 꼭 보면 좋겠다. 치매환자를 덜 미워할 수 있게 된다. 영화당에서 더파더를 소개한 영상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9CmUThWp3U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