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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pr 07. 2023

한가인 고등학교 동창의 썰

얼마 전 한가인의 인터뷰를 보았다. 

24살의 나이로 결혼을 해서 자녀 둘을 키운 그녀. 결혼을 빨리한 장점을 물으니 입술을 붙인 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20대 초반 데뷔를 했던 그녀도 어느덧 마흔 살이 훌쩍 넘었다. 

한가인이 아닌 고등학생 김현주로 살던 시절, 그 애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내 친구의 친한 친구였다.

      

여고는 나름의 낭만과 재미, 또 우악스러움이 있다. 우리들은 자주 웃고 자주 소란스러웠다. 쉬는 시간이 되면 후다닥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에는 교정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옥수수빵과 음료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체크 교복 치마 아래 촌스러운 옥색 체육복을 받쳐 입고 바쁘게 복도를 뛰어다니고 교실에서 쉰내를 폴폴 풍겨 선생님들의 잔소리를 들었다. 내숭 없이 본연의 자유분방한 색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여고생들이 거울을 꺼내 들고 매무새를 단장하던 시간은 주변 남고 학생들과 같이 버스를 타는 등, 하교 시간뿐이었다. 

여고생들의 깨발랄함은 여고에 다녀본 학생들은 안다

    

아침 0교시부터 야자가 끝나는 9시까지 온종일 학교에 있는 심심한 우리들의 화젯거리는 단연코 ‘선생님’이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애들은 서로 사귀고 헤어지는 이야기. 이성친구들에 대한 얘기가 많겠지만 여고는 그런 거리가 없었다. 대신 선생님에 대한 소문은 많고 빨랐다. 선생님들 간의 인간관계, 가정사, 그나마 젊은 남자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요한 이야깃거리였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칭할 때 과목명으로 퉁 치거나,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 세대를 뛰어넘는 불문율이다. 학교에 ‘콩’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문학 선생님이 계셨다. 왼쪽 입술 위 콩알 크기의 까맣고 입체적인 점을 가진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콩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콩 선생님이 김현주가 속해 있던 반에서 수업을 하던 중, 김현주를 보며 얘기했다. 


“넌 참 군계일학 같구나.” 


* 군계일학(群鷄一鶴) : 닭의 무리 가운데서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


문학 선생님답게 사자성어를 고상하게 섞었으나 한 마리 학을 제외한, 그 반 여학생 전부는 졸지에 닭이 되었다. 우리는 분개했다. 비단 그 반 학생뿐 아니라 스스로 같은 처지에 있다고 자신의 외모를 객관화한 여학생들은, 다 같이 콩 선생님의 망언에 대한 분노를 한마음으로 품었다.  “뭐 걔가 예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당시, 내가 본 김현주는 예쁘지 않았다. 


예쁜 게 아니라 달랐다. 나와 너의 얼굴과 다르게 생겼다. 

그건 예쁘다는 느낌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다른 종족...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부족의 인간 같았다. 그 애는 얼굴에 여백이 없었다. 뾰똑한 코를 중심으로 낭비되는 면적 없는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자리 잡았다. 동글 납작 볼살에, 평평하고 평탄한 나와 너의 얼굴이 아니었다.      



친구를 통해 김현주가 고3 여름방학 공부를 하러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남학생들이 어마 어마한 선물들을 보내왔다는 이야기, 놀이동산으로 학교 소풍을 갔을 때 소속사에서 명함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전해 들었다. 우리 학교에서 촬영한 골든벨 프로그램에는 나도 출현했지만 내 인터뷰는 잠시 가족들의 비웃음을 샀다가 조용히 잊혀졌으나, 김현주의 인터뷰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어 텔레비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걸 지켜봤다. 주목받는 학의 인생과 변변찮은 닭의 인생 차이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걷는 것 마저 어색했던 10대를 지내고, 20대가 되어서도 ‘학’과 같은 사람들의 외모를 부러워하며 내 얼굴을 들들 볶아댔다. 타인이 내 외모에 대해 대놓고 평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스스로 그랬다. 셀카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그중 제일 본판이 내 모습과 달리 나온 사진을 맘에 들어했다.  


30대에 들어서는 어느 정도 포기와 체념, 인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는 미녀가 아니고 결코 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했다. ‘학’과 같은 사람들과 나는 태생부터 다르고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춘다고 될 것도 아니었다. 높은 구두 굽보다 낮은 굽의 로퍼를 신고, 뽕브라를 벗고 와이어가 없는 편한 브라를 찾게 된 것은 떨어진 체력 탓도 있지만 타인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의지가 조금씩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타인 눈을 의식하며 사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이 정도면 뭐, 내가 살아가는데 불편함 없는 외모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예인을 할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외모는 내게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드디어 나는 정신승리를 이룬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나의 내면에 대해서도 내려놓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내가 꿈꿔왔던 인간상 - 부드럽지만 강하고, 무례한 언행에도 높은 자존감으로 여유롭고 우아하게 허를 찌를 줄 알며,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깔끔하고 단호하게 하고, 어떤 상황이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 을 잣대로 두고, 네버엔딩으로 찌질하게 굴고 있는 나 자신을 얼마나 들들 볶아왔는지 모른다. 사실 그런 사람은 드라마 속에서, 작가의 피와 땀이 어린 정련된 대사를 내뱉는 멋진 여주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었었다. 내 성격에 대한 인정과 안심을 해 나가는 과정은 외모에 대해 내려놓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하나뿐인 내 얼굴처럼, 내 내면도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건 사실이기에 나는 나를 그만 받아들여야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한가인 그녀를 잘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유명인이 되어 이른 결혼과 육아를 해내야 했던 그녀의 인생도 녹록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아픔과 상처를 감당하며 딸로, 아내로, 엄마로, 연예인의 직업을 소화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한 마리 학 같던 사람의 인생도 다 인생의 큰 틀 안에서는 매한가지이다. 사람들은 삶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일들이 있고 여기에서 비슷하게 느끼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녀가 불편했다. 하지만 최근 방송에 복귀한 그녀를 보면 응원하는 마음을 더 크게 가지게 된다. 학이건 학을 쫓던 닭이건 간에. 각자 그릇대로 자신의 삶을 감당하며 살고, 그 과정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나의 그럭저럭 한 삶에도 응원을 보낸다.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에 종종 안심하며, 걷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대문 골든벨 사진

https://images.app.goo.gl/889c78z3DDHqcs2G9

고등학교 사진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57679     

이른 결혼 이유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7277     

결혼 장점 동영상 주소

 https://media.fmkorea.com/files/attach/new3/20221217/486616/3415475564/5318660495/9de2616075f3fab35b5cad733ece1d73.gif.mp4?d

여고생들의 점심시간

https://m.cafe.daum.net/ssaumjil/LnOm/2958215?svc=daumapp&bucket=toros_cafe_channel_alpha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DoDauQAjT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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