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나에겐 사내에서의 짝사랑, 연애가 그 분야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동갑내기 남자직원을 나타났다.
계속 얼굴을 보는 사이가 아니라 한 번씩 만나는 동료이다.
그 사람의 첫인상은
나와 달리 이성과 대화도 잘 이어가고 친화적인 사람 같아 보였다.
여자언어에도 잘 적응이 된 거처럼 보였다.
“여자친구는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꽤 큰 키에 배우 박서준을 닮은 다정한 말투,
회사 안에서도 평판이 좋았고,
제일 중요한 건 내 눈에 그가 들어왔다는 것.
우연히 점심을 한번 먹은 뒤로
그와는 가끔 나의 직장으로 올 때마다 점심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몇 번의 점심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지만 늘 우리의 대화는 회사이야기였다.
그러나 알았다.
호감이 있는 상대와 밥을 같이 먹는 거 자체가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좋아서
오히려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나도 그 사람의 대화의 흐름을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괜한 급발진으로 어긋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점심시간을 같이 보냈다.
변함없었고, 여전히 우린 누가 들어도 동료의 대화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은 점심시간 종료 1분을 남겨두고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에
뭔가 지금은 물어봐야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다급하게 나를 보고선
“ㅇㅇ씨, 만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그래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 질문이 마치 꿈같아서 상대의 얼굴을 꼬집을 뻔했다.
그 와중에 현실감을 다잡았고, 이상했던 타이밍이 절묘하게 느껴졌다.
나도 다급하지만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없어요. ㅇㅇ씨는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어요! “라는 말끝에 같은 상황이라고 한번 더 알려주는 말을 상대는 했다.
그러곤 우린 영화 속 라라랜드 주인공들이 문을 열고 그 세계를 들어가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시나리오가 맞다면, 우린 미니시리즈 주인공의 초반의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그는 연애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걸 한번 더 알려주었다.
나는 알려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말이다.
몇 주가 지나도 이 사람, 나에게 또 업무적인 쪽지만 보낼 뿐
지난번에 오고 갔던 그 말들에 대해 어떠한 피드백도 없다.
‘나쁜 삐익’
뭘까.
정말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만 궁금했던 걸까?
왜 그런 설레는 질문을 해서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한 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기적이라는데,
‘잠깐 기적이 온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 뒤 어김없이 점심을 같이 먹었다.
평소 서로의 직장 이야기만 했었는데, 상대는 유독 오늘 사적인 대화만 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마음이라는 데 그 말이 딱 맞다.
우리 나이에서는 평범한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그 와는 피했던 대화주제들.
“집에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는 안 해요?”
“혹시, ㅇㅇ씨 종교는 있어요?”라는 말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갑자기 그러면서 그 사람의 SNS사진들이 스쳤다.
내가 본 그 피드 속 사람이 맞다면 그의 종교는 기독교다.
그때도 배경이 교회인 사진을 보면서 “몇 년 전 사진이니까, 지금은 안 다닐 수도 있어.”라며 애써 희망적으로 생각을 했다.
지인 중에 기독교지만 독실하진 않은 경우도 봐서 상대도 그러길 내심 바랐다.
근데 그 사람이 이어간 대화에서 그건 나만의 허황된 꿈이었음을 알았다.
“본인은 기독교이고 모태신앙이라고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 1순위가 종교라고
지금은 연애만 할 나이는 아니니까,
집에서 부모님이 강요를 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에 대해 염두를 안 할 수 없다. “라고 전했다.
‘왜 나의 호감 상대가 교회오빠, 오빠도 아니다 친구!’
내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도 내가 기독교는 아님을 짐작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종교와 가족의 관계,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이 존재하지 않음을 바로 직감했다.
가족들과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를 찾는 그의 집
십자가가 걸려있고 제사가 없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다 잡기 위해 절에 가는 우리 집
절에서 받은 달력이 걸려있고 제사를 지낸다.
다르지만 닮아있기에 그에게 종교와 가족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다시 한번 그려졌다.
그러고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다.
“ㅇㅇ씨, 제 친구 소개받을래요?”
그 친구는 결코 만날 수 없었다.
충격은 있었지만 어쩌면 그 질문으로 복잡했던 관계들에 대한 정리가 빨리 되었다.
그 후 간혹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기독교 인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을 떠올렸고
걷다가 교회 십자가가 보이면 애써 외면했다가 멍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 뒤로 소개팅 받을 일 있으면 상대의 종교를 묻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때때로 물었다.
그때 나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종교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건
내가 가볍게 받아들였어야 하는 질문이었냐고.
만약 ‘우리가 우리를 믿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달라졌을까.’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