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부재

실수에서 돌아보지 않는 삶은 완전한가

by Garden




후회는 인간의 그림자다. 행동 뒤에 조용히 따라붙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흔적처럼 남는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감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재고한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 말은 어쩌면 실수의 가능성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완고함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이 정말 후회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 세계는 과거로부터 해방된 세계라기보다 결국 도덕을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후회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모든 행동이 완료로 끝난다. 잘못된 선택을 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도, 그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죄책감이 없으니, 마음은 가볍다. 그들은 자신을 탓하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현재에만 충실하면 되니, 마음에는 고통 대신 평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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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 평온이 너무나도 달콤하다. 후회가 없으니, 기억 속에는 실수의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모든 과거가 괜찮았던 일로 정리된다. 그러나 그 평온은 곧 무감각으로 변한다. 반성하지 않는 사회는 점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후회가 없는 인간은 배움이 없는 인간이 된다. 배우지 않는 평화는, 가장 위험한 평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불렀다. 이성이란 단순한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후회는 그 자기 성찰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했던 말, 했던 선택, 지나친 행동을 되짚으며 ‘그때 그래야 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과 대화한다.


후회가 없는 세상은 이 대화가 사라진 세상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은 인간의 도덕을 형성하는 가장 원초적 사유다. 후회가 사라지면, 인간은 옳고 그름의 경계를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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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후회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했던 것에 대한 후회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는데)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그때 그걸 시도해야 했는데)이다. 첫 번째 후회는 죄책감을 낳지만, 두 번째 후회는 욕망을 낳는다. 즉, 후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이다.


후회를 통해 인간은 ‘다음번에는 다르게 해보자’라는 결심을 한다. 후회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후회가 없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현재에 충실하며 완벽하게 살아가지만, 그 완벽함 속에서 아무도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늘 ‘지금 이대로 괜찮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종교는 후회를 속죄로 전환해왔다. 기독교의 회개, 불교의 참회, 유교의 반성은 모두 후회를 인간의 도덕적 성장으로 승화시키는 장치였다. 인간은 후회를 통해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이해한다. 그 감정이 사라지면, 용서 역시 불가능해진다.


후회 없는 사회에서는 용서가 불필요하다. 누구도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옳다고 믿고, 타인의 상처에 대해 “그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결국 관계는 해명 없이 끊어지고, 상처는 복구되지 않는다. 오해를 풀고 관계가 돈독해지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많은 관계는 얕아져 간다. 후회가 없다는 것은 단지 편안함이 아니라, 책임감의 결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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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로운 것을 씻어내거나 제거한다는 폭넓은 행위를 가리키는 데서 비롯되었다. 본래의 뜻은 ‘정화’ 또는 ‘청소’에 가깝고, 인간은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을 비우고 정돈함으로써 정신적·감정적 회복에 이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즉, 감정을 정화하고 영혼을 씻어내는 행위를 뜻했다.


비극이 관객에게 주는 가장 강한 정화는 후회였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리어왕은 진심을 말한 딸 코델리아를 내쫓고, 아첨하는 두 딸에게 왕국을 나누어준다. 배신과 파멸을 겪은 뒤 코델리아의 진심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리어왕은 결국 죽어가는 코델리아를 품에 안은 채 절망 속에서 생을 마치며, 자신의 오판이 불러온 비극과 마주한다. 그 비극적 결말 속에서 관객은 함께 후회하고, 그 후회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만약 후회가 없다면 비극도 사라진다. 비극이 없는 세상은 희극만 남는 세상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세상이다. 감정의 정화도, 인간의 성찰도 없는 세계. 그곳에서는 슬픔이 무의미하고, 잘못도 의미를 잃는다. 후회는 고통스럽지만, 인간을 깊게 만든다. 후회 없는 세상은 평평하고, 얕다. 그곳의 사람들은 슬퍼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사랑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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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상상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모든 일이 "그럴 수도 있지"로 마무리되고, 그 어떤 상처에도 다시 돌아보지 않는 삶. 처음에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그 자유는 곧 공허로 변할 것이다.


후회는 인간의 내면에 깊이를 만든다. 그 감정이 무겁고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무게가 없으면 인간의 윤리도 무너진다. 후회는 인간의 도덕적 근육이다. 겪을 때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 흐르지만, 후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의 반대 방향을 향해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다. 동물에게는 감정적 불쾌, 결과 비교, 선택 오류 인식에 가까운 인지 반응만 존재할 뿐 자기반성적 후회가 없다. 후회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한다.


후회를 제거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의 인식 능력을 제거하는 일이다. 과거가 의미 없는 존재는 미래를 계획하지 못한다. 후회 없는 세계는 과거를 잃고,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그곳에서는 모든 시간이 현재로 고정된다. 인간이 반성하지 않는 만큼, 세상은 진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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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는 악이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을 멈추고 무관심하게 침묵할 때 조용히 자라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후회하지 않는 인간은 바로 그런 사유하지 않는 인간이다. 우리는 후회를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후회의 근원적 형태다. 후회가 사라지면 공감도 사라지고, 공감이 사라지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후회는 인간 사회의 가장 미세한 윤리적 신경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후회를 했다. 말하지 말아야 했던 말, 놓치지 말아야 했던 기회, 끝내 화해하지 못한 누군가의 얼굴. 그 후회들은 종종 나를 괴롭혔지만, 그 괴로움 덕분에 나는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단단히 살 수 있었다. 후회는 나를 벌하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사람으로 만드는 감정이었다.


후회 없는 삶은 현재를 사는 데 있어 완벽할지 모르지만, 인간적이지는 않다. 후회는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 인간의 온도를 지켜준다. 후회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자신의 마음에 책임을 진다. 후회 없는 세상은 결국 기억 없는 세상이자 책임 없는 세상이다.


진짜 유토피아는 후회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후회를 견디고 다시 살아갈 힘을 품은 세계다. 후회는 실수의 증거이자, 성장의 씨앗이다. 우리가 후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여전히 결핍과 가능성을 함께 품은 존재임을 증명한다.



유토피아 실험실 - II. 인간성, 감정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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