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의미를 잃으면 욕망은 어디로 향할까
돈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신이다. 신처럼 모두가 믿고, 신처럼 모두가 의지한다. 그리고 신처럼 그것이 사라지면 세상은 무너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돈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자산 규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가난도 부도 없고, ‘더 많이 가진다.’라는 욕망이 사라진 세상. 그곳은 정말로 유토피아일까?
그 세계의 사람들은 같은 양의 자원을 가지고 태어난다. 똑같은 집, 똑같은 크기의 방, 똑같은 옷. 음식은 공평하게 분배되고, 더 비싼 차도, 더 넓은 집도 없다. 가진 게 같으니 비교할 이유도 없다. 도난도, 질투도, 계급도 사라졌다. 처음에는 모두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난이 없어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평등의 본질을 체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이유 모를 공허함이 찾아왔다. 부자는 사라졌는데, 만족도 사라졌다. “같다”라는 말이 평등의 상징이었지만, 평등은 무의미를 낳았다. 무엇을 하든 손에 잡히는 결과가 같으니,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사라졌다. 노력과 보상의 연결이 끊기자, 노력의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경제학의 근본 원리는 교환이다. 가치가 다르기에 교환이 가능하다. A가 가진 사과와 B가 가진 빵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바꾸며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채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교환의 이유는 사라진다. 그리고 교환이 사라지면, 사회는 정지된다. 돈이란 단순히 물건을 사는 도구가 아니라 교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재화의 가치를 없애려던 사회는 결국 언어를 잃은 사회가 되었다. 물건은 남아 있지만, 의미는 사라졌다. 모두가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욕망이 사라진 곳에서 풍요는 존재할 수 없다.
돈이 사라진 세상은 결핍이 없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핍을 느낄 수 없는 사회다. 결핍이 있어야 창의가 생기고, 부족함이 있어야 인간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모두가 같은 것을 가진 사회에서는 창의력이 낭비가 된다. 누구도 새로움을 발명하지 않는다. 새로움을 발명해도, 그에 따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풍요 속의 무기력에 갇히고 만다.
돈은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한 상징이다. 그 상징이 사라지면, 욕망의 방향을 잃는다. 욕망은 언제나 불균형에서 태어나고 돈은 그 불균형을 사회가 관리할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하지만 완벽히 평등한 세상에서는 욕망이 사라짐과 동시에 동기부여도 사라진다. 그건 평등이라기보다 더 이상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멈춰버린 시소처럼 정지된 평형이다.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진다. ‘부자가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까?’ 그 사회의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을 벌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돈이 사라진 자리를 시간과 주목이 대신 채운다. 누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는가, 누가 더 많은 경험을 쌓았는가. 이제 인간은 시간의 부자와 관심의 부자로 나뉜다.
자산의 평등은 결국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다. 돈의 격차가 사라지면, 인정의 격차가 생긴다. ‘모두가 같은 것을 가졌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특별해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새로운 경쟁을 만든다. 욕망은 형태가 바뀌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소비가 곧 정체성인 사회이다. 우리는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한다. 돈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그 증명 방식이 행동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물건 대신 경험을 소비한다. 돈 대신 명성을, 소유 대신 이미지의 가치를 추구한다. 결국 사회는 또 다른 화폐를 만들어낸다.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상징이 곧 화폐가 된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믿음 아래에서, 인간은 새로운 불평등을 찾아낸다. 그건 욕망이 아니라, 존재의 본능이다.
돈은 인간을 타락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과 인간을 연결했다. 거래가 없던 시대의 인간은 자기 부족, 자기 마을 안에서만 살았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교환하면서 거래를 위해 연결이 시작되었고, 돈이 생기면서부터 인간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도 신뢰를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은 불신의 사회를 대신해 만들어진 가장 효율적인 신뢰의 장치였다. 그 신뢰가 사라지면, 사회는 다시 폐쇄적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평등하지만, 그 평등은 상호 믿음의 개념이 없는 평등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다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돈이 문제인 건,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인간의 가치 그 자체가 되어버린 현실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으로만 가치가 측정되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돈이 사라진 사회는 그 측정 방식을 잃은 사회이다. 즉, 무가치의 평등인 셈이다. 그 평등 속에서 인간은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돈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건 감정일 수도, 지식일 수도, 영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가치는 다시 태어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가치 부여의 동물이니까. 우리는 세상에 의미를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의미를 잃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 또한 잃어버린다.
재화 가치가 없는 세상은 처음에는 낙원처럼 보이지만, 곧 허무의 세계가 된다. 모두가 같은 것을 가지고, 아무도 더 이상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세상. 평화는 유지되지만, 목적은 사라진다. 욕망이 사라진 사회는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은 생명이 없어서 생기는 침묵이다.
진짜 유토피아는 돈이 없어진 세상이 아니라, 돈이 인간의 전부가 아닌 세상이다. 돈이 사라져도 의미가 남는 사회, 그 의미가 다시 인간의 가치를 정의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진짜로 찾아야 할 유토피아일 것이다.
유토피아 실험실 - III. 사회, 제도의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