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쪼개고 나직이 기다리기
캠핑장에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나는 비로소 화로를 꺼낸다. 장작을 쌓고 불을 지피는 일. 캠핑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늘 처음처럼 설레고 사뭇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이 불 하나를 피우는 게 왜 그리도 서툴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저 욕심껏 두꺼운 장작들을 우물 정(井)자로 높게 쌓아두고는, 강력한 가스 토치를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굉음을 내며 20분 넘게 불길을 쏘아대야 겨우 장작 겉면이 검게 그을리며 불이 붙곤 했다. 무모했고, 또 조급했다.
가끔 영상 매체에서 무인도 생존기를 보곤 한다. 라이터 하나 없이 구석기 시대의 방식대로 불을 피우겠다고 나선 이들을 보면, 그 용기가 가상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마른 장작이라 해도 그 단단하고 두꺼운 몸체에 바로 불꽃을 심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바토닝(Batoning)'이라는 과정을 즐긴다. 두꺼운 칼을 장작 끝에 대고 다른 나무로 툭툭 내려치면, 단단하던 장작이 의외로 순순히 제 몸을 갈라 길을 내어준다. 그렇게 장작을 가늘고 세밀하게 쪼갠다.
시중에서 파는 작은 불쏘시개 위에 이 가는 나뭇조각들을 먼저 올린다. 작은 불꽃이 가느다란 조각에 옮겨붙으면, 그 위에 조금 더 두꺼운 조각을, 또 그 위에 가장 듬직한 장작을 차례로 얹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토치로 20분간 씨름할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어느샌가 화로 가득 온기가 차오른다.
가만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문제들도 이 장작과 같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너무 크고 무거운 문제를 단번에, 그리고 통째로 해결하려고만 드는 건 아닐까.
도저히 타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문제도 잘게 나누고 쪼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작은 조각부터 하나씩, 차례대로 불을 지피다 보면 어느덧 거대한 장작더미도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화로에 불을 피우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임을, 나는 캠핑장의 밤 아래서 배운다.
너무 큰 숙제를 한꺼번에 풀려고 애쓰지 말자. 그러다간 불꽃이 채 일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딱 한 걸음씩만 나아가기로 한다. 그 작은 걸음들이 일 년간 모이면 365개의 새로운 길이 되고, 내 인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커다란 모닥불이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