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의 정적인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사실 커피를 내리는 행위 자체는 단순하다. 하지만 원두가 품은 고유한 숨결을 온전히 끌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섬세한 정성을 요구한다. 다행히 요즘은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대중화되어 이를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잘 내린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마치 우아한 꽃차를 마시는 듯한 황홀함을 선사하곤 한다.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쓴맛도 없는, 적당한 무게감 속에 상큼함과 단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런 한 잔 말이다.
나만의 루틴은 이렇다. 수동 그라인더를 들고 수평을 유지하며 천천히 원두 20g을 갈아낸다. 물의 온도는 80도에서 83도 사이. 보통의 레시피보다 낮은 온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커피 본연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살리면서도 불필요한 쓴맛의 발현을 막기 위해서다. 원두를 천천히 가는 마음 또한 마찰열로 인해 향미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배려다. 60g의 물로 조심스레 뜸을 들인 뒤, 나머지 240g의 물을 세 번에 나누어 붓는다. 기본을 살짝 변주한 이 소박한 레시피가 나에게는 가장 기분 좋은 단맛을 선물해 주었다.
물론 원두의 배전도에 따라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쓴맛이 강해질까 싶어 마지막 추출을 과감히 포기하고 따뜻한 물만 더하기도 한다. 고수들이 보기엔 그저 가소로운 초보의 몸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서툰 레시피 안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나만의 데이터가 쌓여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나만의 속도로 이 과정을 즐기며 조금씩 나아질 생각이다.
커피를 내리다 보면 세상 일도 이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립된 도구나 프로세스가 있더라도, 결국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변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을 찾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달리,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매 순간이 살아있는 원두를 다루는 것과 같다. 기본을 지키되 상황에 맞춰 온도를 낮추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커피를 내리며 다시금 배운다.
최근 도심 외곽에는 화려한 대형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곳에 좀처럼 발길이 가지 않는다. 대신 직접 로스팅을 하거나, 주인장의 고집스러운 이야기가 담긴 작은 공간을 찾아 나선다.
사진이 그랬듯, 커피 역시 우연한 기회에 스승을 만났다. 나의 커피 선생님은 오랜 시간 취미로 로스팅을 해오다 최근 경기도 포곡읍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오전에만 문을 여는 작은 커피랩을 차렸다.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만, 그곳에 가면 선생님이 직접 내려주시는 깊은 풍미의 드립 커피를 착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토요일 오전이라면, 원두 한 봉지를 옆에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커피와 인생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중년 사내의 뒷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