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렇게 떠났다.
언제부터인지 내 가슴 속에 단단한 돌덩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꽃비가 흩날리던 그해 봄, 작았던 돌덩이는 어느새 커져 버려 내 숨구멍을 서서히 막아가고 있었다.
아프게 자리 잡은 그 돌덩이와 또 다른 돌덩이.
나를 이끈 빛의 끝에는 ‘월석점’이 있었다.
천문의 운명을 가진자.
그곳에서 빛나는 돌덩이에 이끌려,
마침내 내 가슴 속 돌덩이의 정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벚꽃이 만개한 사월.
바람 한 줄기마다 연분홍 꽃비가 흩날리고, 봄은 소리 없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나무마다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지마다 빼곡히 매달린 꽃들은 어둠을 덮는 하얀 우산이 되었다.
봄바람 한 줄기에 꽃잎들은 미련 없이 몸을 놓았고, 하얀 숨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그 봄날의 한 가운데서, 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꺼져가던 날밤, 그가 일주일 만에 집 현관문을 열었다. 그는 열린 문 사이로 망설이듯 발을 들여놓았다.
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현관 바닥의 묵은 때를 연신 문지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기전, 도어락 비밀번호 소리만으로도 그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현관에 길게 드리워졌을 때, 하린의 시선은 그의 얼굴이 아닌 발등에 머물렀다. 하린은 감정을 바닥에 쏟아내듯, 더 세차게 손을 움직였다.
그는 발걸음이 얼어붙은 것처럼 한동안 말없이 하린을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시간이 멈춘 듯한 시선이었다.
잠시 후,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래 품어온 무거운 말을 꺼내듯,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일주일 만에 들어선 그의 첫마디. 하린은 잠시 손을 멈췄다. 꾹 다문 입술에 힘이 실렸고, 걸레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걸레를 비벼대는 소리는 바닥이 아니라, 타들어 가는 제 마음을 치는 것만 같았다.
그의 지난 말과 행동이, 걸레 자국처럼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하린의 행동을 예상 한 듯 자리를 피하듯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갔다.
아이들이 잠든 후,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하나씩 매듭짓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더 미룰 수 없다는 결심처럼 가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곤 조용히 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누군가 크게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이상하리 만치 무거웠다. 그는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켜 둔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천장을 향해 등을 붙이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니면,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잠시 문가에 선 채 그를 바라보았다. 텔레비전 소리는 방 안을 채웠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쌓여 온 침묵이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하린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얘기?”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그가 문소리에도 미동이 없었지만 하린이 말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멍하니 하린을 바라보다 “됐다” 하고는 등을 돌려 다시 누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연 그의 한마디가 방안의 무거운 공기를 짓눌렀다.
“나…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어.”
하린은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와 처음 꺼낸 그의 말에 순간 숨이 막혔다.
기가 막혔다. 생각지도 못한 허탈함에 웃음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하린은 아는척 모르는 척 담담히 다시 물었다.
“무슨 인생을 말하는 거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말고 나 자신을 위한 인생. 그런 삶을 살고 싶어.”
그의 입에서 ‘자신을 위한 인생’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하린은 속으로 수많은 말을 퍼붓고 싶어졌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무엇이었는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이제 와 인생을 논하는 이 사람이 과연 누구를 위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인생 속에 자신과 아이들은 어디에 있었는지도. 하지만 하린은 그 모든 말을 삼켰다. 마음을 내려놓기로, 그 순간만큼은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같이 갈 수 없는 인생이 될 것 같아.”
그의 마지막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하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방 안에서 더 이상 꺼낼 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듯, 아니, 꺼낸다 한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 사람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수많은 말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자신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하린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때는 그 눈빛 하나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졌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낯선 사람의 얼굴처럼 멀게 느껴졌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은, 이미 그에게 닿지 못할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실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가려도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테니까.
하린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다.
“그래, 알았어.”
하린은 그가 말을 더 꺼내기 전에 돌아섰다.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들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싸늘한 공기를 남긴 채 방을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 텔레비전의 요란한 소음이 다시 복도를 타고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잡음처럼 느껴졌다.
또 그러다 말겠지. 그는 늘 그랬으니까.
그는 항상 결심인 듯 말해 놓고, 며칠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와 일상을 흉내 냈다. 상처는 하린의 몫이었고, 봉합도 하린의 몫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두 아이 사이에 몸을 뉘었지만, 역시나 잠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린은 그의 행동이 사춘기로 돌아간 소년처럼 느껴졌다. 책임보다 감정이 앞서고, 현실보다 ‘나’를 먼저 찾겠다는 그 말투. 상처를 남기고도 그것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얼굴. 결혼 전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선택했던 그의 모습이 결혼 전이었는지, 결혼 후였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서로의 시간이 언제부터 어긋났는지도 모른 채, 이제는 다시 이어질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어떤 인생을 원하는 건지, 이혼을 수없이 생각해 보고도 다시 그를 품어야만 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아버지 없는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그리고 하린 자신이 경제적으로 아이들을 충분히 뒷받침해 줄 수 있을지…. 그 두 가지는 이혼을 수없이 고민하면서도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시계 바늘은 자정을 넘겨 조용히 다음 날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잠을 청해보려는 순간, 그가 있는 방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 가방을 꺼내 무언가 허겁지겁 챙겨 넣는 소리, 그리고 잠시 뒤 들려온 현관문이 급히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의 결심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으로 드러났고,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미친 새끼’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일주일 만에 들어왔다가 아이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돌아선 그 사람을 보며, 자신이 결정해야만 했던 인생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문득 허무해졌다. 하린은 그의 빈방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잠을 어떻게 청했는지도 모르는 사이 아침이 밝았다. 잠깐 잠든 눈은 해의 기운이 드리울 때쯤 눈이 떠졌고, 일어나자마자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방문을 열었다. 새벽에 들렸던 소리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의 옷 몇 가지와 물건들이 놓여 있던 자리는, 그가 다녀간 흔적처럼 텅 비어 있었다. 전과는 다른 그의 행동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순간,
하린의 가슴속에 오래 끼어 있던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뭉쳐, 숨구멍을 막듯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감정을 꾹 눌러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이성을 되찾으려 애썼지만, 가슴 한가운데 박힌 돌덩이는 좀처럼 내려앉을 기미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연신 쓸어내렸지만, 목을 타고 내려가는 물조차 부담스러웠다.
그가 떠난 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흘렀다. 아이들 안부를 묻는 연락 한 통 없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래도’라는 말로 하루를 견뎠지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그를 향한 원망만 더 단단하게 굳어가게 했다. 그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박힌 돌덩이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부모의 책임조차 외면한 그의 철없는 행동에선 헛웃음만 나왔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더 나은 건 아닐까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