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 원망
‘그 사람이 원한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린은 그가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사랑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그의 고향인 N지방으로 오게 된 순간부터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만의 공간 속에 아이들이 생기면 달라질 거라 믿었지만, 그 믿음이 오히려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든 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다른 내면은 점점 드러났고, 각자가 살아온 방식과 삶의 흔적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와 하린은 자라온 환경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랐고, 이념과 행동의 기준까지 모든 것이 어긋나 있었다. 사랑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현실은,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는 생활처럼 서로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이어가던 삶은 결국 서로를 밀쳐낼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갔다.
마음속에서 엉킨 실을 풀어가듯 하린은 그를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엉키기 시작했는지도, 처음이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도 찾을 수 없었다. 풀어 보려 할수록 실은 더 조여들었고, 어쩌면 끊어 버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도. 그의 행동은 그 시작점마저 깊이 감춰 버렸고, 결국 모든 것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았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을 다잡고 그가 있는 회사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그렇게 해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애써 부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바라던 인생에 하린과 아이들이 걸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잔인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쓸쓸한 확신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하린은 결국 엉킨 실타래의 처음을 찾기보다 끊어 버리기로 했다. 이제는 정말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가 집을 나간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핸드폰 화면에 입금 알림이 떴다.
농협 입금 500,000원
3/30 09:04
451455-55-******11
서현서
그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생활비 자동이체가 들어왔다.
오십만 원.
하린이 일을 시작한 뒤부터 생활비는 대부분 하린의 월급으로 채워졌다. 그가 버는 돈은 미래를 위한 저축이라며 자신이 따로 관리했다. 그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린의 몫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는 맞춰주겠다며 일 년 전부터 매달 오십만 원을 보내왔다. 아이 한 명의 양육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 그는 늘 같은 금액을 보냈다. 한 번도 늦지 않았고, 한 번도 더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장으로서 남긴 책임 전부였다.
혼자가 되어도 결국 하린이 감당해야 할 몫을 미리 연습시키는 것만 같아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러려고 생활비까지 미리 정해 놨던 걸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생각으로 버텨 왔다. 그래도 살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통장에 찍힌 오십만 원을 볼 때마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내가 뭘 바라고, 무엇을 붙잡고 이렇게까지 바득거리며 살아왔던 걸까. 그가 집을 나간 뒤에도 여전히 찍힌 돈 오십 만원은 하린의 가슴을 짓 누르듯 아파왔다.
첫째가 태어난 이후로 그는 늘 일이 바쁘다며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퇴근 후 잠깐 저녁을 먹고 씻은 뒤 다시 나서는 것이 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의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다행인지.
그가 집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빠를 찾지 않았다.
마치 찾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한 것처럼, 아이들의 시선은 조용히 하린을 향해 있었다. 하린은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늘 그래 왔듯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뿐이었다.
봄 햇살을 받은 텃밭에서 작년에 심어 두었던 하얀 민들레 씨앗이 싹을 틔웠다. 어느새 파릇한 잎을 내밀더니 작은 하얀 꽃을 하나둘 피워 올렸다. 아이들이 하얀 민들레를 본 적이 없다며 직접 고른 씨앗이었다. 민들레는 텃밭 여기저기에서 하루가 다르게 뽀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민들레는 꽃을 피우기 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했다. 하린은 하얗게 피어오른 텃밭의 민들레를 한참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느라 한 계절을 통째로 보내야 했던 시간. 하린은 그 시간이 자신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그렇게 버티다 보면 한 해가 지나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내면 언젠가는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하린은 엷게 열린 입술을 움직이며 작게 되뇌었다.
기다리자. 조금만 더, 기다리자.
퇴근 후 가방을 뒤적이며 휴대폰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가방 속 어디에도 휴대폰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무실 충전기에 꽂아 둔 채 그대로 두고 온 것 같았다.
딱히 연락 올 일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사무실에 다녀올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아이들만 두고 다시 집을 나서기에는 마음이 걸렸다.
하린은 결국 내일 출근하면서 확인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하린은 가장 먼저 휴대폰을 찾았다.
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였다.
하린은 본능적으로, 혹시나 했던 일이 그에게 생겼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에게는 가족이라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로 동생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법적으로 그의 배우자인 하린.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걸려온 이 전화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낯선 번호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채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누군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 모, 님….”
어눌한 한국어였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외국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린은 잠시 여성의 익숙한 목소리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방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요. 어디신가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여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사모님… 사장님 지금 병원에 있어요.”
순간 하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는 한층 무거운 기운이 실려 있었다.
“어제… 사장님 전화했어요. 사모님… 전화 안 받았어요. 사모님 병원… 빨리 와요….”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띄엄띄엄 건네는 말들은 흐트러진 억양 속에 묻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하린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린의 손과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병원이라니….
한 달하고 이주 만에 들려온 그의 소식이었다. 하린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불안이 깊어지자 가슴 깊숙이 박혀 있던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요동치는 것 같았다.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니, 떨어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손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전화기를 잡을 틈도 없이 하린은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여성이 말해 준 병원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온 하린은 그를 찾았다.
그때 낯익은 외국인 여성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 하얗게 질린 하린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뽀얀 살결에 눈이 크고, 긴 눈썹 아래 또렷한 눈을 가진 여자였다.
하린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캄보디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이자, 하린을 늘 ‘사모님’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하던 아이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하린의 손을 꼭 잡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병실 안쪽을 가리켰다.
하린은 그 손에 이끌리듯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도포를 머리 끝까지 덮고 누워 있는 형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발이 멈춰 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일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다가갈 수 없었다.
한참을 서 있던 하린.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어 한 걸음 옮겼다.
하얀 시트 아래로 떨어져 나온 손목에 결혼 예물로 받았던 그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였다.
하린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무게뿐이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냉기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뒤 이렇게 차가운 시신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터질 듯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눈물도, 말도, 숨조차 막힌 듯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고요 속에 잠긴 것 같았다.
하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며 떠났던 그가,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린의 가슴속에 박혀 있던 돌덩이들은 서로 엉켜붙은 채, 점점 더 깊숙이 숨통을 조여 왔다. 그 무게에 눌려 하린은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는 살고 싶어 떠난다고 했다.
“이게 새로운 인생이었어? 왜…왜 그랬는데…, 아이들은… 이런 아빠였어….”
가늘게 새어 나온 목소리가 허공에서 부서졌다. 어떤 감정 하나로는 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었다. 분노 같기도 했고, 슬픔 같기도 했다.
그가 없는 시간 동안 하린은 그를 원망하며, 또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왔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어떤 결심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하린은 지나온 시간을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하얀 안개에 갇힌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를 보내는 길, 운구차는 벚나무가 우거진 도로 사이를 천천히 달렸다.
만개한 벚꽃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바람에 흩날린 꽃잎들이 운구차 앞에 쏟아졌다.
하얗고 분홍빛의 꽃비는 마치 그가 가는 길에 마지막 꽃길을 깔아주듯 그가 가는 길에 내려 앉았다.
모든 생명이 다시 피어나는 4월의 봄날.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고 말하던 그는 그렇게 꽃바람과 함께 이 세상에서의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