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눈물

유서 그리고 배신

by garim

“첸다, 이제 안 나와요. 사모님… 그년, 나빠요. 찾지 마세요.”

작업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상할 만큼 단호했다.
하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자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사모님… 몰라요. 나는 말 못 해요.”

그리고, 망설이던 입술이 끝내 떨어졌다.

“첸다… 그년이 사장님 죽인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어딘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빗소리인지, 심장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끝없이 맴돌았다.

죽였다.

그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린의 눈물을 대신하듯 하늘은 끝없이 비를 쏟아냈다. 장례식 내내 꾹 눌러 담아 두었던 감정이 그제야 무너져 내렸다.
뻑뻑하게 말라 있던 눈이 젖기 시작했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빗물에 섞인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하루를 지배하듯 맴돌았다. 생각은 점점 뿌연 안개 속으로 가라앉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안개를 뒤흔드는 잔상처럼, 눈을 떠도 감아도 그의 목소리는 같은 높낮이로 되풀이되었다.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어…”
그 새로운 인생의 끝이 왜 죽음이어야만 했을까. 그때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와 어긋난 삶에서 더는 그런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외면했고, 외면한 채로 돌아섰다. 하지만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내가 잡았어야 했는데. 한 번만 더 잡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물밀 듯 가슴 깊이 치밀어 올랐다. 죄책감은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고, 그 무게는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그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몇 숟가락의 퍽퍽한 밥알조차 삼키기 어려웠다. 그나마 수분이 든 과일이라도 씹어야, 메마른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눈빛에 슬픔을 채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컸다. 하린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일상을 이어 갔다.

며칠 후 그의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형수님, 힘드시겠지만 사무실 정리를위해 한번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머물렀던 사무실을 정리 하기 위해, 그가 운영하던 회사로 향했다.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한때 그와 함께 일하며 경영을 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회의실, 복도, 나란히 앉아 고민을 나누던 풍경들이 파로마처럼 번져왔다. 처음 시작과 달리 잦은 의견 충돌과 갈등 끝에 결국 하린은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그때의 결정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되돌리면 되돌릴수록, 그때 아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때 그 상황들에 좀 더 성숙하게,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는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가슴을 덮쳐왔다.

자신이 떠난 자리에서 그는 결국, 하나뿐인 동생과 함께 회사를 꾸려가야 했다. 사무실 문 앞에 선 하린. 죄책감을 고스란히 안은 채 조용히 문을 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의 동생이 먼저 다가왔다.

“형수님, 오셨어요?”

하린은 자신 때문에 하나뿐인 혈육을 잃게 했다는 깊은 죄책감에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동생은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고, 하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이 아닌 안타까움과 걱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의 동생이 하린에게 다가와, 두 손에 든 상자를 내밀었다.
“여기 형님 물건은 제가 대충 정리해봤어요. 한번 보세요.”
하린은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어 그의 익숙한 물건들을 하나씩 들춰보며, 그의 동생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죄송해요. 형님을 제가 좀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그의 동생은 하린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수님 잘못 아니에요. 형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하려는 말을 숨기듯 깊은 한숨만 내뱉었다. 잠시 침묵을 두른 후 그의 동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형수님. 아이들이랑 몸 잘 챙기시고… 죄책감 속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린을 향한 진심 어린 말에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직은 그의 동생 말처럼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당분간은 도련님이 회사를 운영해 주었으면 좋겠어.”

말을 남기고 하린은 사무실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듯 조용히 작업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창 작물 포장으로 분주한 시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린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하린은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인사를 받아넘겼다.

노동자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치던 하린은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한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첸다는 오늘 안 나왔나요?”

하린의 말에 못 들은척 상자 쌓는 것에 집중하던 외국인 여성. 대답을 기다리듯 여성을 기다리는 하린을 외면 하지 못하고 작업 반장이 하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첸다와 같은 국적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른 체형에 한국에서 지내며 얼굴이 뽀얗게 피어 오른 첸다와와 달리, 그녀는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툼한 입술, 곱슬머리는 묵직한 인상을 남겼고 통통한 체형은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후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작업 반장이 된 그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첸다, 이제 안 나와요. 사모님 그년, 나빠요. 찾지 마세요.”

라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쁘다니요….” 이유를 물었다.

“사모님, 몰라요… 나는 말 못 해요. 첸다… 그년이 사장님 죽인 거예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손을 저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하린은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엉켜 있던 머릿속의 실타래에서 한 가닥이 ‘툭’ 끊어져 나가는 듯한 감각이 하린의 온몸을 감쌌다.

하린은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더 말을 이어가기 힘든 듯, 그녀는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말투와 눈빛 사이에 흐르는 어조만으로도, 첸다와 그의 관계에 어떤 특별한 감정이 얽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조용히 다독이며, 천천히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첸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있었다. 내 번호를 알고 있었고, 내가 병원에 도착하자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회사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린은 그제야, 자신이 몰랐던 둘의 관계를 더듬듯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의 유품을 뒤적였다. 유품을 뒤 적이던 하린의 손이 익숙한 수첩 하나에 멈췄다. 그가 수첩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린이 직접 골라 선물했던 검은색 수첩이었다.
표지 한쪽에는 ‘K’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고, 그의 이름의 약자와 같다는 이유로 하린이 망설임 없이 선택한 수첩이었다. 수첩을 집어 들어 한 장씩 넘겨 보았다. 수첩 안에는 여기저기 자잘한 메모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린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내용이라 그녀는 큰 관심 없이 무심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수첩의 중간쯤을 넘기던 순간, 하린은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듯 멈춰 섰다. 손끝이 떨렸다. 그동안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던, 어쩌면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유서가 거기 있었다. 하린은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리고 조심스레 유서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한 줄, 또 한 줄.
마지막 문장을 다 읽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가슴 깊숙이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가 거칠게 치밀어 올랐다. 유서의 어떤 부분에도 아이들과 하린을 향한 한마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못한 이름은 첸다였다. 그녀에게 전하는 간절한 미안함,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린은 한동안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그 글을 바라보았다.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막장 드라마 속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허탈한 웃음. 그러나 그 허탈함 뒤로, 서서히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뒤엎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첸다를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만큼은 아닐 거라 믿고 기다려 주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믿었던 관계들 사이에서 산산이 부서진 가슴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죽음에 대한 자책은 결국 분노로 뒤바뀌었다. 하린은 첸다에게 남긴 유서를 붙잡아 거칠게 찢어 버렸다.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차 안의 공기 속에서 맴돌듯 떠올랐다가, 한순간에 흩어져 내렸다.

분노에 찬 하린의 손이 저려 왔다. 머리 끝까지 전해 지는 분노는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하린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그의 동생이 창밖을 바라보다, 하린의 차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다가와 조심스레 창문을 두드렸다. 하린은 그 노크 소리에 놀라며, 터질 듯 치밀던 분노를 다시 꾹꾹 가슴속으로 눌러 넣어야만 했다. 그의 동생은 내려진 창문 너머로 흐트러진 수첩과 하얗게 질린 하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형수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하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쉰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알고 계셨죠. 아까 하려던 말… 첸다.”
그의 동생은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더니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형수님, 우선 차에서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상태로는 운전하시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 사무실로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말에도 하린은 자신의 몸 상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첸다와의 관계를 다시 물었다


“형수님이… 모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게… 형수님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어요.”

하린은 그의 동생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정말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지만,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고 말을 꺼낼 용기는 나오지 않았다.

말없이 흐려진 시선 속에서 분노를 삼키고 있는 하린의 모습은 금세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형수님, 형이 첸다와 특별한 관계였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첸다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어 했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고요. 분명한 건, 형이 삶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새로운 인생…. 바로 이런 거였어? 자식을 버리고 찾겠다는 인생이 다른 사람과의 삶이었다니…. 그런데 왜? 죽음으로 갔어야만 했을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동생의 말을 듣고 하린은 그를 이해해 보려고 했었으나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하린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불안과 혼란이 마음 한켠에서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이들, 두 아이의 시선이 다시 하린을 향했다.
마치 꺼져 가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엄마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하린은 더 이상 자신을 탓하며 그 자리에 붙잡혀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가슴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죄책감의 돌덩이를 조용히 묻어두게 되었다.
단단한 껍질에 싸인 그 무거운 돌덩이 속에, 흘러내리려 애쓰던 눈물마저 더 이상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꼭꼭 눌러 담았다.

그를 위해 흘렸던 모든 죄책감의 눈물을 이제 내려놓고, 다시는 스스로를 무겁게 짓누르지 않겠다고 하린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자신과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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