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석점, 그 빛

빛을 만나다

by garim

그가 떠난 지 이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년이라는 시간은 그 마음을 완전히 묻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이들에게 남을 상처를 생각하며 더 이상의 아픔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쏟으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어느 날,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월세 계약을 연장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 전화였다.

하린은 핸드폰을 들고 잠시 말이 없었다. N지방으로 내려오던 날이 떠올랐다.

아파트가 몇 채 되지 않는 읍 단위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읍에서도 외곽진 곳에 자리를 잡으려 하니, 집을 구하는 일은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집은 턱없이 비쌌고, 저렴한 집은 아이들과 지내기엔 너무 좁거나 위험했다. 전세를 알아 보았지만, 이곳 또한 전세난을 겪고 있어 마땅한 집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허물어져 가는 낡은 단독주택 하나를 선택했다. 단점은 많았지만, 아이들이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월세라는 부담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약간의 손질과 리모델링을 거쳐 집을 정돈하고 나니 생각보다 제법 괜찮은 보금자리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벽지 틈에서는 눅눅한 곰팡이가 번졌고, 비가 오는 날이면 묵은 집 냄새가 스며 올라 집 안을 채웠다. 세월에 삭은 벽돌은 가루처럼 부서져 벽지 사이를 들뜨게 했다.
마치 현재의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집 역시 사람의 마음처럼 오래전부터 삭아 있던 부분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이 무너지면 어쩌지…’

한밤중에도 그 생각에 문득 눈을 뜬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건, 여자 혼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어둠 속 주택을 지킨다는 막막함이었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골목, 깜빡이는 현관 불빛, 낯선 소음에도 깨어나는 날들.

이 집에서 지내는 하루하루는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린은 늘 마음속에 되뇌었다.

‘계약이 끝나면 꼭 이사하자. 더 이상 아이들과 이 집에서 버티고 싶진 않아.’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망설임은 없었다. 하린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사하겠습니다.”

집 근처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다행히 미분양 세대가 남아 있어, 이번에는 새로운 집을 구하는 일이 한결 수월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한 첫날 밤.
하린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 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낯선 공기의 결이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함. 아이들의 숨소리마저 평화롭게 들리던 그 밤, 하린은 그 어느 날보다 깊고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첫째 유하가 잠자리에 누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젠 나 혼자 있어도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아. 밖에 사람들도 다니고, 경비 아저씨도 계시잖아.”

혼자서도 잘 지낸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그제야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함이 몰려왔다. 집에서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 들이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함께 이겨내야 할 부분이지만,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아이를 꼭 안아주며 하린의 온기로 마음을 전했다.


7월의 여름 저녁,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주변은 갓 들어선 상가들의 불빛으로 환하게 물들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린 듯 바쁘게 이어졌고, 그중 낮 더위를 시키듯 카페 테라스로 모여들었다. 별이 수놓은 밤하늘 아래 내려 앉은 풍경은 마치 고흐의 ‘아를르의 포룸 광장’을 떠올리게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파트 뒤편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고,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고요한 불빛 외에는 희미한 가로등과 별빛이 어우러져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그 밤의 풍경은 조용하면서도 아련하고 쓸쓸해 보였다.


하린은 그중 화려한 불빛이 아닌, 조용하고 쓸쓸한 밤길 쪽을 택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조용한 밤 산책은 생각보다 쓸쓸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과 둥근 보름달이 마치 그들을 위해 준비된 등불처럼 밤길을 환히 밝혀 주는 듯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조그마한 골목길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 인적이 끊긴 골목길. 낮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길이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려던 찰나, 둘째 유이가 하린의 손을 끌며 외쳤다.

“엄마! 저기, 저기 좀 봐요!”

아이가 가리킨 골목 끝에서 빛이 길게 새어 나오듯 골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은 가늘고도 여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어두운 골목을 환히 비추며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뻗어 나왔다.

하린은 순간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신기한 듯 하린의 손을 힘껏 끌어당겼고, 결국 그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향해 아이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들어서 깊게 들어갈수록 그 빛은 또렷했으며, 어두운 골목 안에서 빛을 품고 있듯 더욱 환하게 빛이 뿜어졌다.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반짝이던 그 빛은, 작고 허름한 상점 앞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상점이 생긴 지 수세 월이 흘렀음을 말해주듯, 낡고 허름한 나무 간판에는 ‘월석점’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얇은 유리창을 잇는 나무 틀은 오랜 세월 수분을 잃어버린 채 거칠게 일그러져 있었고, 갈라진 나뭇결 사이로는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균열이 드러나 있었다. 그 틈을 스치듯 흘러나온 빛은 조용히 숨을 고른 채 퍼져 나갔다. 온화하고 따뜻한 기운을 품은 그 빛은 은근한 거리감을 두며 신비롭게 일렁이고 있었다. 상점 안쪽 오래된 책과 가구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의 병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숨을 죽인 채 빛이 흘러나오는 뿌리를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나란히 진열된 병들 사이로 스며 나온 빛줄기. 그중 하나의 병에 담긴 돌멩이에서 시작되어 다른 몇 개의 병 속 돌멩이들과 이어지듯 번져 나왔다. 흩어지던 빛은 이내 한 줄기로 모여 조용히 밖으로 흘러나왔다.
병 속의 돌멩이들은 저마다 다른 색의 빛을 머물었고, 서로를 깨우듯 미묘하게 일렁였다. 그 빛은 눈에 보이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현실과는 어딘가 어긋난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 빛들은 하나씩은 조용하고 은은했지만, 색들이 창문 밖으로 모여들자 마치 오로라처럼 눈부신 향연을 이루며 우리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와!”

하린과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빛에 이끌리듯 아이들은 상점 문 앞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작은 손으로 힘껏 돌려 보았지만, 손잡이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붙들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둘이 힘을 모아 돌려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차갑게 식은 문고리는 굳게 잠긴 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았나 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창에 비친 빛 앞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렸지만 마음 한켠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잔상이 남아 있었다.


하루가 지나서도 그 빛은 하린의 뇌리에 잔상처럼 번져,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온화함과 따뜻함, 그리고 자신을 끌어당기던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오랜만에 느껴본 빛의 따듯함이 그동안의 아픔을 녹이듯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하린은 그 빛을, 다시 한번 만나야 한다는 다짐 섰다.

그날과 같은 저녁시간, 하린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그러나 골목 깊숙이 들어설 때까지도, 어제처럼 골목을 채우던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상점 앞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희미하게 흔들리는 연한 불빛이었다. 설렘으로 다가섰던 발걸음은 그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신비로움이 사라진 불빛, 그 빛을 대신한 것은 그저 상점 전등에서 흘러나오는 평범한 빛뿐이었다. 하린이 불켜진 상점 앞에서 주춤하는 사이 아이들이 상점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낡은 문소리와 함께 문에 걸렸던 종이 흔들리며 조용하던 상점을 깨웠다.

오래전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나무 진열장과 낡은 라디오, 희미하게 빛나는 백열등이 상점 안을 아늑하게 채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동그란 안경을 코끝에 얹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고풍스러운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서며 문 쪽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하린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시오.”
할아버지의 인상에서 풍겨 나온 목소리는 먼지 쌓인 오래된 책을 넘기는 듯 부드럽고 따뜻했다. 하린과 아이들은 어느새 숨을 죽인 채 그 풍경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아이들은 어제 봤던 그 신기한 돌멩이를 떠올리며, 상점 안을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녔다.
바닥에 놓인 나무 상자, 오래된 찬장 속, 진열장 구석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눈빛은 반짝였다.
마치 숨은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처럼, 아이들의 발걸음은 상점 구석구석을 바삐 오갔다. 그러던 중, 유하는 병 속에 담긴 돌멩이 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무슨 찾는 거라도 있는 것이냐?”

유하는 여전히 병을 응시한 채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분명 어제는 여기서 푸른 빛이 났었거든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 순간 미묘하게 변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할아버지가 안경을 아래로 내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유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푸른 빛을 봤단 말이냐…?”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네! 저도 봤어요!”

유이가 눈을 반짝이며 거들었다.
“붉은 빛도 나고, 초록색도 나고… 무지개요, 무지개!”

어제 그 돌멩이에서 번져 나오던 신비로운 빛을 떠올리며,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하린도 그 장면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음을 느끼며, 아이들 뒤에서 조용히 그 병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이상하네요…, 저희가 어젯밤에 이병에 담긴 돌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봤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돌멩이로만 보이네요….”

하린 또한 자신이 잘 못 본 것이 아님을 확신하듯 말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하린과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들며 “허허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상점 안을 가득 채웠고 흔들리는 백열등과 삐걱거리는 진열장이 마치 그 웃음에 함께 반응하는 듯 흔들렸다.

이전 03화흐르지 않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