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찾은 이오

빛나는 그림

by garim

서령이 말하던 책을 찾아낸 하린. 빼곡히 들어찬 책들 사이에서 그 책이 은은히 빛나던 순간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쩌면 그 책은 처음부터 하린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린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 마치 사명을 다한 듯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낸 듯 책은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서고 한켠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종이 한 장 한 장은 시간의 무게에 눌린 듯 누렇게 바래 있었다. 다행히도 두꺼운 가죽 커버 덕분에 제법 온전한 상태였고 하린이 표지를 넘기자 책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바스락거리며 미세한 온기를 내뿜었다. 책 속지에는 ‘운명의 돌’이라는 이름만이 명확하게 적혀 있을 뿐 작가도, 출판사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린은 책 제목을 본 순간 그 빛나는 돌의 정체를 밝혀 줄 유일한 실마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령이 책속에 빨려간 듯 멍하니 서있는 하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하린,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밖으로 나가서 열어보자.”

하린은 서령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서령과 함께 지하를 벗어나 한적한 열람실에 자리를 잡았다. 밖으로 나오며 밝은 빛을 흡수한 책은 생각보다 심한 먼지와 지하실 특유의 묵은 냄새를 풍겼고,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쌓여 있던 먼지가 흩날리며 코끝을 찌를 듯했다. 서령이 책을 툭툭 털려는 순간, 하린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선배님, 안 되겠어요. 우선 먼지라도 좀 털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하린은 도서관 책 소독기에 책을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소독기는 책 위의 먼지를 날려 보내고 빨아들이며 장마다 밴 묵은 냄새까지 천천히 정화해 나갔다. 책장이 바람에 한 장씩 넘겨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린은 항균제 특유의 냄새에 마음마저 정돈되는 듯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소독기의 타이머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사이, 책을 바라보던 하린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빛, 분명 어느 한 페이지에서 희미하게 다시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소독 완료를 알리는 ‘띵’ 하는 소리가 울리자 하린은 주저 없이 책을 꺼내 들었다. 소독기에서 나온 책은 지하실 특유의 묵은 냄새와 먼지를 털어낸 채 새 책처럼 산뜻한 향기를 풍겼다. 아니, 오히려 새 책보다도 더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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