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아픔
달빛이 사라진 뒤, 언제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잡화점은 다시 외형만 남기고 달빛과 함께 사라졌다. 마치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듯 그 자리는 전보다 더 낡고 허름한 공기로 가득 찼다.
달빛 잡화점에서 책을 통해 이오의 능력을 알게 된 하린의 마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또 왜 자신이 선택받게 되었는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린의 마음은 점점 이오에게로 기울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책장을 넘겼지만, 이오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깊은 물결처럼 그녀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책 속에 숨겨진 문장 하나하나가 자신과 닿아 있다는 느낌에 하린은 매일 밤 늦도록 그 세계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책 속에는 왜 자신이 선택받아야 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천문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임을 암시하는 몇 가지 단서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하린은 그 단서들을 곱씹으며 책장을 넘겼다. 어느새 피로에 젖어 눈꺼풀이 무거워진 하린이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평온한 얼굴 위로 잔잔한 미소가 스며들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옮긴 듯, 하린은 이전과는 다른 꿈속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그녀는 지난번에 만났던 노파를 다시 마주했다.하린이 다가가자 노파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노파가 쥐고 있던 손을 펴자, 그 안에는 환하게 빛나는 이오가 있었다. 하린은 그 빛을 받아 두 손에 꼭 쥐어 가슴에 안았다. 차갑던 마음이 서서히 따뜻함에 감싸이는 듯했고 그 순간 하린의 눈가에 얼어붙은 눈물의 알갱이들을 녹이고 스르르 눈가를 적시며 촉촉한 눈물을 흘려보냈다. 바로 그때 잠에서 깬 하린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따뜻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온기가 가슴에 남아 눈을 뜬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린과 이오가 한마음이 된 듯, 이오도 방 안을 은은히 밝히며 하린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아침을 준비하는 하린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챙기고, 자신 또한 출근 준비를 하는 일은 이제 몸에 밴 습관처럼 시간의 틀 속에서 분주하게 이어졌다. 하루의 일과는 그저 아이들을 위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 여겨왔던 하린이었다. 그러나 ‘엄마’라는 이름으로 굴러가던 이 일상이, 이오를 만나면서부터는 조금씩 ‘하린’이라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또 어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하린은 이오를 늘 곁에 두기로 했다. 그렇게 이오를 품에 안은 채, 하린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린은 출근하자마자 늘 그래 왔듯 열람실 환기를 시키고 안내 데스크에 앉았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통해 위로받을 누군가의 발자국을 조용히 들으며,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았는지 살피는 일이 일과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