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을을 밀어낸 겨울의 찬 공기가 하린의 손등을 스쳤다. 두 아이와 맞잡은 손바닥 틈새에는 늦가을 햇살이 남긴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하린은 유하와 유이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이끄는 길로 여행을 나선다. 이번 여행지는 바다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밀려왔지만, 셋이 함께라면 겨울바람이 몸속 깊이 스며들어도 그 차가움은 금세 따뜻한 웃음으로 녹아내렸다.
적당한 햇살을 따라 다니며 모래를 연신 파내는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바람에 실려 오고가는 물살과 바다 냄새는 하린을 어릴적 동심으로 이끌어, 친구들과 해변을 달리던 기억을 불러냈다.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하린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바다는 계절이었고, 숨결 이었다. 어린 날을 지탱하던 또 하나의 삶 그 자체였다. 파도에 몸을 던지며 친구들과 모래 위를 굴러 웃던 기억은 파도 소리처럼 그의 가슴속에 남아,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금, 삶이 무겁게 짓눌러 오는 순간마다 그 기억은 조용히 깨어나 하린의 마음을 감싸 주었고, 차갑게 식어 가던 발걸음을 다시 뜨겁게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시절 떼려야 뗄 수 없던 시간들과 함께, 지난밤 꿈속에 나타난 친구가 떠올랐다. 남편이 떠난 뒤 스스로의 마음을 굳게 닫으며, 하린은 친구에게 향하던 따뜻한 마음까지도 오래도록 묻어 두고 지냈다. 하지만 꿈의 여운은 그 벽을 흔들어 놓았다. 하린은 망설임 끝에 전화기를 들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아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어? 그동안 힘들다는 이유로 연락을 못 했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읽히지 않는 메시지를 몇 차례나 확인할수록 하린의 마음속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붉게 번지는 노을이 바다 위로 물들어 갈 즈음, 오래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다.
너는 잘 지내고 있어? 나 병원에 있어.
병원에 있다는 친구의 답장이 닿자, 꿈과 현실이 포개어지는 듯한 서늘한 기운이 하린의 온몸을 스쳤다. 전율과 함께 밀려든 것은 친구를 향한 깊은 걱정이었다. 하린은 왜 병원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가장 먼저, 병원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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