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다시 만난 시온

by garim

하린이 병원에서 퇴원한 후 맞는 첫 출근. 도서관 문을 여는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하린은 이 걸음을 단순히 ‘출근’을 위한 발걸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린에게 도서관에서의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서 온유한 책 냄새를 들이마시고, 조용히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또 누군가 읽고 남긴 마음의 결이 겹겹이 스며 있는 책들을 정리하며, 페이지마다 머물러 있는 온기와 이야기를 천천히 느끼는 시간이다.

그 모든 순간이 하린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을 다시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주는 소중한 시간임을 그녀는 알고 있다.

다시 찾은 공간에는 익숙한 책 냄새가 하린을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자마자 포근히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 향 속에 자신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오롯이 자신의 속도로 시간을 천천히 채워 나가려 다짐한다.

“안녕하세요, 여사님.”

하린은 한결 건강해진 목소리로, 일찍 도서관에 나와 계신 여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여사님은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하린을 맞으며, 그동안 쌓아 두었던 걱정을 내색했다.

“아이고, 선생님. 이제 정말 괜찮은 거지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선생님 없으니까 이 도서관이 텅 빈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더라고. 선생님 자리만 자꾸 눈에 밟히고…”

여사님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하린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하린은 그 따뜻한 손길에 마음이 찡해졌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여사님. 저도 많이 그리웠어요.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정말… 집에 돌아온 느낌이에요.”

“그래요, 선생님. 이제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요. 선생님이 건강해야 우리도 마음을 놓지요.”
여사님의 눈가에 번진 온기가, 하린의 가슴 속으로도 고요히 스며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떠올리며 빈자리를 아파했고, 걱정해주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하린은 아파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하루는 온기로 가득 찬 채 시작될 수 있었다.

잠시 후,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에 하린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 종종종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걸음, 터벅터벅 무겁게 올라오는 발걸음.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시간대의 손님들은 모두 익숙한 ‘단골’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발걸음이 하나둘 하린을 향해 멈춰 섰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하린을 걱정했던 도서관 이용자들이, 마치 그녀가 바라보던 시점의 사람들처럼, 이번에는 서로의 시선으로 하린을 바라보며 저마다 안부를 건넸다.

그동안 자신 혼자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실은 모두와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하린은 깨달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서령이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마치 매일처럼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지만, 오늘은 한층 더 바람을 닮은 듯 가벼웠다.
하린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서령의 눈가가 단숨에 환해졌다. 그동안 눌러두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소였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말없이 하린을 안아주었다.

“자기야… 역시 자긴 이 공간에 있어야 한다니까.”
서령의 목소리는 가볍게 장난을 치는 말 같았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마음이 실려 있었다.
“빛을 가진 자가 자리를 비우니, 꽃인 내가 시들 수밖에 없었잖아. 이제야 숨 좀 쉬겠네.”

그 말을 듣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도서관의 공기 속으로 작은 파문처럼 따뜻한 웃음이 번져갔다. 누군가는 수줍게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었고, 또 다른 이는 책장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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