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뒷 담화

점심시간의 소란

by garim

점심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저마다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한 아이가 양치컵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 토끼 컵 두 개밖에 없어. 빨리 먹는 사람이 토끼 두 개 할 수 있어.”

그 말에 아이들 사이로 작은 긴장감이 번졌다. 몇몇은 숟가락을 조금 더 바쁘게 움직였다. 곧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토끼 컵 하나를 꺼내 들고는, 남은 하나를 향해 컵을 살짝 흔들며 은근한 신호를 보냈다.

밥을 먹던 여자아이 두 명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너 어떤 컵 쓸 거야? 나 토끼 컵 쓰려고 하는데, 너 곰돌이 하면 안 돼?”
다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약속처럼 믿은 아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천천히 뒷정리를 한 뒤 컵이 놓인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토끼 컵이 없었다. 곰돌이 컵을 쓰겠다고 했던 그 친구가 토끼 컵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곰돌이 컵을 든 친구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 그러는 게 어딨어. 곰돌이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토끼 가져가면 어떡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는 두 아이를 불러 각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보았다. 상황을 정리한 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마음속에 남은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는 친구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수지가 곰돌이 컵 한다고 해놓고 토끼 컵 쓴 거 있지!”

그러자 주변 아이들이 맞장구를 치며 큰 소리로 되물었다.

“토끼 컵 네가 쓰기로 한 거야?”

그 소리는 곰돌이 컵을 쓴 친구의 귀에도, 교사의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그 순간, 곰돌이 친구의 얼굴에 ‘저건 아닌데?’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교사가 아이들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까 컵 가져갈 때 깜빡했다고 했잖아. 수지가 미안하다고도 했고.”

교사는 곰돌이 친구의 말을 대신 전하며 상황을 차분히 정리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이미 사과가 오갔다는 사실을 다시 짚어 주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로 아이들 사이에 번지던 말들은 멈췄고, 상황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한편 화장실 다른 쪽에서는 남자 아이가 양치를 하며 말했다.

“선생님, 지윤이가 양치 대충해요.”

그 말을 들은 지윤이는 잠시 참다가, 결국 옆으로 다가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나 양치 잘하고 있거든!”

아이들 사이의 작은 약속과 서운함, 억울함과 자존심이 좁은 공간 안에서 겹겹이 부딪히고 있었다. 교실과 화장실을 오가는 이 짧은 점심시간은, 아이들 마음속의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흔들리고 또 드러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교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5살 아이들 말하는 거 들으셨어요?”

지금 오가는 말들이 도무지 다섯 살 아이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듯, 교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상황을 짚어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편 가르기와 이야기의 흐름이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만 삼키고 있던 생각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게… 원조 뒷 담화가 아닐까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선생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낯설면서도, 너무 익숙해서 웃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날 화장실에서의 짧은 소동은, 아이들이 이미 관계 속의 감정과 사회적 언어를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잘잘못을 뒷말로 말하게 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한 부분인 것 같다. 나 역시 누군가의 잘못을 이야기한 적도 있고, 어느 날은 나의 이야기가 뒷 담화로 오르내린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뒷 담화라는 것은, 모르면 모를까 반드시 돌고 돌아 결국 그 주인공의 귀에 닿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남는 상처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아픔이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일로 많이 힘들어했다.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방법을 택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것만이 벗어나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 때는 아니라고, 맞을 때는 맞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근소근한 뒷담화’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친구에 대해 뒤에서 조용히 말하지 않는다. 모든 친구가 들을 수 있도록, 친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교사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당사자가 들을 수 있게, 숨기지 않고 말이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화장실에서의 그 친구처럼, 혹은 그저 아이답게 자신의 억울함이나 생각을 큰 소리로 표현한다. 그렇게 상황은 뒤로 흐르지 않는다. 모든 친구가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마치 증인이 된 것처럼,
“맞아요. 아니에요.”
하며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보탠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아이들의 방식이, 우리가 잊고 지낸 가장 솔직한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숨기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고,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 어른이 된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조용히 되묻게 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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