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치약 하나가 뭐라고

by garim

가끔은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산책길에서 개미 한 마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또 멀리 날아가는 새를 놓치지 않으려 나란히 서서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돌리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그 뒷모습 속에서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이 조용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있다.

어느 날, 늘 같은 패턴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양치를 시작했다. 각자 칫솔을 꺼내 들고 치약을 짜는 순간, 이미 꽤 사용한 치약은 아이들 힘으로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교사에게 조심스레 도움을 청하거나, 형님들에게 다가가 치약을 짜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도움을 청하는 대신 안 나오는 치약을 끝까지 스스로 짜내겠다며 치약을 손에 들고 안간힘을 쓴다. 그중 한 친구는 아무리 힘을 줘도 치약이 나오지 않자 갑자기 물을 틀어 치약 속에 물을 채워 넣었다.

치약통이 물로 가득 차 빵빵해지자 그 힘을 빌려 치약을 짜 아무 일 없다는 듯 양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된 친구. 치약을 짜는 순간 치약 대신 물만 쏟아져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곧장 교사를 불렀다.

“선생님, 누가 치약에 물 넣었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교실에 또렷하게 울렸다.

교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치약을 직접 확인해 보았다. 치약에 물을 넣으면 그 순간은 사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 차례의 아이는 물 범벅이 된 치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교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치약에 물을 넣지 않기로 약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조심스럽지만 단단히 먹었다.

“누가 치약에 물을 넣었을까?”

하고 묻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조금 전 치약에 물을 넣었던 친구를 일제히 가리켰다.


교사는 천천히 그 친구에게 다가가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재우, 네가 치약에 물 넣은 거 맞아?”

교사의 질문에 아이는 잠시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네”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교사는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지난번에 함께 약속했던 일을 꺼냈다. 치약에 물을 넣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아이를 향해 다시 한 번 분명히 강조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 아니면 혼이 난다고 느껴서인지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소리에 힘이 들어간 교사와 눈물을 흘리는 재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상황이 더 커질까 걱정이 되었는지 어느새 재우와 교사 주변으로 조용히 모여들었다.


계속되는 교사의 훈계에 아이들의 시선은 울고 있는 재우에게로 쓸렸다. 그때 재우의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두 친구가 살며시 손을 뻗어 울고 있는 재우의 등을 어루만졌다.


말없이 등을 쓰다듬고,위로하듯 조심스럽게 토닥이는 손길.

앞에서는 함께 혼이 나는 장면이었지만, 뒤로 올려진 손은 서로를 감싸 안듯 조용히 위로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알지 못한 채 앞에 서 있는 교사는 여전히 말을 이어갔고,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어른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위로가 필요할 때 조용히 손을 올려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양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충분히 든든해 보였다.

누군가는 나의 잘못을 탓할 수 있을지라도, 그 뒤에서라도
내 마음을 알아봐 주고 말없이 토닥여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이 아닐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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