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돌아온 브런치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는 바로 발길을 옮겼다. 미닫이 문을 열자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아니 살짝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쓸었다. 스마트폰이 알려준 아침 기온은 13도였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어깨가 빠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바닥이 흥건한 물 위를 맨발 맨몸으로 뛸 수는 없었다. 얼른, 조금이라도 더 빨리, 탕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급한 마음과는 달리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걸어 발을 탕 안에 넣었다. 으아. 뜨겁다.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탕 안으로 몸을 담갔다. 으하아. 신음 같은 숨이 벌린 입 사이로 새어 나왔다. 높다란 나무들 뒤로 보석처럼 빛나는 아침 해가 보였다. 얼굴까지 탕의 뜨거운 열기가 번졌다. 슬쩍 일어나 탕 끝에 올라앉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 위로 올렸던 수건을 내려 붉게 물든 몸을 가렸다. 고개를 들자 탕 안에서는 나뭇가지에 가려 안 보이던 해가 온전하게 보였다. 눈 부셔. 해를 마주한 눈동자는 뜨거운 해를 마주한 훈장을 얼마간 쥐고 있었다. 시선을 옮기는 곳마다 해가 남긴 훈장이 따라와 가는 곳마다 검은 점이 보였다. 탕의 수면에 반사된 해가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뻗어나가고 사라졌다. 오로라처럼. 사이 시원한 아침 가을바람이, 내 몸의 뜨거운 기운을 앗아가면서 물기도 모두 닦아냈다. 몸은 붉은색을 잃고 본래의 제 색을 찾았다. 나는 다시 뜨거운 탕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탕의 수면 위로 하얀 수증기가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빠르게 흩어졌다. 그 움직임을 쫓다 눈길이 하늘에 닿았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얇게 찢긴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높이 올라서는 해를 피하듯 빠르게 움직였다. 탕 끝을 따라 사철나무가 테두리를 이루고 있고 제일 가까이는 단풍나무가 있다. 단풍이 들 때 오면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게 분명한, 크고 잎이 무성한 단풍나무. 그 뒤로 밤나무 삼나무 등이 보인다. 나무둥치가 자작나무처럼 색 바랜 나무도 보이지만 자작나무 같지는 않다. 스마트폰 없이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일까, 짐작해 보는 사이 아침 해는 바삐 움직여 위로, 위로 올라갔다. 해가 나무들 위로 올라 서 그 위용을 드러내자, 나뭇잎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다이아몬드가 무수한 보석상에 들어선 것처럼 눈이 닿는 곳마다 청결한 반짝임이 이어졌다. 끊임없이. 지난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이런 아름다운 눈부심은 보지 못했겠지. 높이 오르는 해의 움직임에 쫓기듯 나뭇잎 끝에 매달렸던 빗방울들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나갔다. 제 삶을 다한 보석들이 묘지를 찾듯, 어제의 삶을 산 빗방울들이 숲으로 찬란하게 낙하했다."
가루이자와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흠뻑 빠져버렸다. 아름다운 숲과 시원한 바람, 맛있는 음식, 그리고 도쿄보다 싼 과일값에(특히 샤인머스캣, 아마 일본에 와서 엄두도 못 내던 샤인머스캣을 처음 사 먹은 곳도 가루이자와일 것이다). 그 뒤로 신랑이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여지없이 가루이자와를 외쳤다. 신랑은 가루이자와 좋지, 답은 해도 그래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보자 하며 다른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루이자와는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다 잠시 지나가는 곳이 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첫 방문 때의 장소들을 기억하며, 거기 잠깐 들르면 안 돼? 거기 가보면 좋겠다, 말했다. 동선이 가능하면 신랑은 기꺼이 들러주었지만 가루이자와를 느끼고 담기에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쉬웠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 오래도록 머물고 있던 지난 10월 초, 가루이자와에서 두 번째 숙박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는, 일본의 많은 숙소들이 그러하듯 온천이 있었다. (온천이 있는 숙소들은 대게 이용시간 동안 아무 때고 이용이 가능하기에) 우리는 저녁에 한 번 또 일어나자마자 또 한 번 온천을 찾았다. 그리고 아침 7시 즈음 들어간 노천탕에서 나는 글을 썼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지난 3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렇게 묵혀두었던 브런치를, 가루이자와에서 떠올렸다. 다시 쓰고 싶다는 열망이, 노천탕의 열기처럼 끓어 올라 나를 붉게 물들였다. 기분 좋은 홍조와 함께.
많은 일 중 가장 큰 사건은, 어쩌다 일본 도쿄 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쿄에서의 시간도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그간 묵혀두었던, 음식 이야기와 도쿄살이 이야기를 여기 다시 써보자고 한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누가 기다렸을지 모르지만)
2025.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