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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Aug 27. 2020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글을 쓰는 일이라면 어쩐지 자신이 있었다. 


그 근거는 어렵지 않게 써도 칭찬받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전국대회에서 받은 상장들 (주로 장려상이나 가작, 입선 급),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내가 생각나는 대로 쓰고 나면 선생님에 의해서 다른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논술 모의 답안의 기억 등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글 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강렬한 기억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어느 기말고사 국어시험이다. 객관식 문제들에 이어서 주어진 문제는 아마도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정도 되는 주제로 OMR 카드 뒷면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것도 시험시간 내에. 


마침 나는 가슴이 뛰고 있었다. 바로 전 시간에 수학시험을 친 터라 그 문제풀이의 촉박함과 재검토의 긴장감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수학시험'을 주제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국어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내 글을 수업시간에 읽어주셨다. 물론 내 글이 일등은 아니고 차상 정도 되었는데, 나로서는 나의 생생한 경험이 글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약학과에 진학한 나는 나의 경험을 풀어놓을 곳을 찾지 못했고, 대신 시험 때마다  A3 답안지 양면으로 빽빽이 그동안 외운 것들을 모조리 써 내려놓는 기염을 토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은 교과서에 대한 복사일 뿐이었지 나의 글쓰기는 아니었다. 


간간히 일기도 쓰고, 뭔가를 끄적이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만족할 만큼 풀어내 놓지 못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왔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15년을 보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마침 구분형의 변화경영 연구소라는 곳에 기웃거려보니 그럴듯했고, 흉내도 낼 겸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책도 읽고 하루를 계획한 뒤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여전히 있었으니 바로 손으로 글을 쓸 것인가, 키보드로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손으로 쓰자니 팔이 너무 아파서 길게 생각을 펼쳐갈 수가 없고, 키보드로 쓰자니 어딘지 영혼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


그렇게 새벽시간을 들여가며 몇 년을 생활했건만 남은 것은 나에 대한 불신과 일찍 일어나는 습관뿐이었다. 그나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상황이 바뀌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삶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미리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인도로 발령 나서 일 년도 넘게 떨어져 생활하고 있던 남편의 빈자리를 방치할 수 없다는 명분 하에 한 번도 쓰지 않던 육아휴직을 두 아이 앞으로 1년씩, 총 2년을 내기로 하고 인도로 떠났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시간이 많으면 내가 하고 싶던 일은 크게 두 가지. 글쓰기와 영어공부였다. 인도에서는 아이들이 스쿨버스로 왕복 세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므로 나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는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공부는 할 수가 있었지만, 글은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곳의 생활을 기웃거리며 단상을 몇 꼭지 쓰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쓸 수가 없었다. 시간도 많은데, 대체 뭐가 또 문제인 것일까?


내가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자체에 의문이 들었다. 쓸 마음은 있는 것인지? 쓰겠다는 것은 하나의 왜곡된 에고에 불과한 것인지?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쓸 얘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써 내려놓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고, 누구에게 읽히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휴직을 하면 책이라도 한 권 뚝딱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그럴만한 콘텐츠가 없었다. 


아.. 차라리 영어 공부나 하자. 매일 원서를 읽고, 단어를 외우고, 원서를 필사하며, 문제집을 풀고, 미드를 보는 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콘텐츠가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묻고, 어디로 향하는지 묻고 답하고 또 물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복직한 지금이 되어서야 나는 어찌 되었든 꾸준히 글을 써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 삶도 내가 선택한 것인가? 그렇다. 아무도 나에게 휴직기간에 놀고, 복직한 뒤에 글 쓰기를 하라고 한 적이 없다. 설마 내 영혼이 그렇게 시켰을까? 그 존재는 그렇게 지시적인가? 설사 지시를 무의식 중에 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예전에  한 번 탈락시켰던 브런치에서  이제는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내가 보기에는 깔끔한 인터페이스가 글을 읽기에 좋지만, 한 편으로는 어쩐지 상업적인 느낌도 나는 브런치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를 써 보이고 싶다. 내 삶에서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나만 알고 있다가 망각해버리고 싶지 않다. 비록 내 글솜씨가 거칠어도 내 글을 통해서  누군가 비슷한 경이로움을 자신의 삶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있을까! 


비록 오늘은 거친 첫걸음이지만 글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나와 내 글을 읽어주는 당신들의 삶에 감사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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