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집중하기
올해부터는 주말에 당직을 하지 않는다. 지난 23년간 해 왔던 토요일 격주 당직 (주 5일제 이전에는 매주 근무였지!)과 휴일은 3일 쉬고 하루 당직하던 의무가 당분간 해제된 것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편안하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출근은 얼마나 긴장되고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는지!
주말에는 집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토요일 오전은 집안일에 할당해 봤다. 설거지를 모두 끝내고 그릇들의 물기까지 닦아 그릇장에 넣어 놓고, 싱크대 상판과 전기레인지, 커피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머신, 전기밥솥까지 닦아낸 후에 마지막으로 개수대를 스빈토로 수전과 씽크볼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으면 주방리셋 끝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마치 잊고 있었던 것을 찾기라도 한 듯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안도감과 평온함과 자신감이 생겨나는 그런 느낌이다.
이 느낌의 정체가 뭘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나와 밀착한 생활에 충실함이 가져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한 타임씩 주방을 리셋하거나 한 구역을 정해서 물건을 모두 꺼내고 버릴 것을 버린 후에 굴러다니는 마스킹 테이프에 네임펜으로 라벨을 써서 붙여가며 정리를 다시 해 놓는 일, 이것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오후에 완전히 사라지기 일쑤다.
새벽부터 일어나 사부작거리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점심 먹고 모처럼 책을 읽어보려 펼쳤을 때 몇 페이지 못 넘긴 채 잠들고 만다. 눈 떠보면 어느새 어둑해지는 저녁때이고 부랴부랴 있는 반찬에 밥만 해서 먹거나,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사다가 먹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오전에 얻었던 충만감이 모두 사라지고 말뿐더러 휴일 오후를 허송세월 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와 월요일 아침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수를 냈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한살림 매장에 가서 장을 봐오는 것이다. 고기나 소모품은 창고형 매장에서 한 달에 한 번 사 오지만, 신선한 채소나 적은 양을 소비하는 식재료는 한 주 동안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조금씩 장을 보는 것이 우리 살림에는 잘 맞다. 이 장보기 시간을 누워서 낮잠 자는 것 대신 운동도 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둘러보는 기회로 만들고 보니 이 또한 주말 루틴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장을 봐 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정리하고, 대파를 빈 화분에 심어서 거실 구석에 세워뒀다. 열한 살 딸이 간식이 먹고 싶다며 레시피를 찾아서 초콜릿쿠키를 굽겠다고 한다. 그래서 재료 위치를 알려주고, 저울을 꺼내줬다. 슬쩍슬쩍 도와주지만 어느 선 이상은 넘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쿠키는 그녀의 쿠키이므로. 휴대폰에서 레시피를 계속 확인하면서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하는 아이 옆에서 나는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리한다. 계량이 정확한 베이킹은 실패할 일이 별로 없다는 내 예상처럼 맛있는 쿠키가 만들어졌고, 온 가족이 저녁식사 후에 디저트로 우유에 찍어 먹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낭비 없는 삶>과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를 읽다가 머리만 쓰는 게 피곤해져서 정약용의 아학편 따라 쓰기를 펼쳐서 몇 페이지 한자를 써 본다.
더 이상 머리로 뭔가를 하는 게 힘들어져 결국 몸을 움직여야겠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래서 옷장의 내 옷과 아이들 옷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작아지거나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은 따로 모아두고, 세탁소에서 딸려온 철사 옷걸이들도 모두 배출 대상이다. 과연 다시 입을 수 있을지 의구심은 들지만, 상황이 된다면 입을 것 같은 옷들을 남겨둔다. 아들러 식으로 목적론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입는 것을 목표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옷들을 그냥 옷장에 걸어두기만 하는 생활은 줄어들 텐데.
나의 생활환경을 돌보는 것이 안도감과 충만함 그리고 자신감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이런 활동이 내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주고, 이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