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면 보이는 것

by 가로등

지난주에는 가족들과 조조영화를 보고 오후에는 쉬다 보니 주일 미사에 가지 않았었다. 봉사가 있는 수요일에는 새벽미사에 가긴 했었지만, 몇 달 전처럼 매일 가지 않으니 종교의식들은 조금은 마음에서 멀어진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출근길에 나무들 사이를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드리곤 했다. 무엇보다 환희의 신비 1단은 하루를 시작할 때 정말 큰 힘이 되어준다. 내용인즉슨,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고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주는 장면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내가 당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도 되지 않고, 아기가 뱃속에 생겼다는 것 자체도 큰 일일 텐데.. 게다가 천사가 나타나기까지 한다면 더더욱 미쳐버릴 일이 아닌가? 그런데, 성모마리아 님이 거기에 대고 ‘네’라고 대답했단다. 나이도 어렸다는데….!


말도 안 되고, 억지인지도 모르고 만들어내도 유분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주어지는 상황에서 그냥 ‘네’라고 반응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러면 그렇게 된다. 내가 그 상황을 통과해서 걸어 나올 수 있게 된다.


일요일인 오늘은 저녁 미사에 갔다. 청년들이 많아서인지 새벽미사나 중고등학생 미사보다 에너지가 느껴진다. 제대 뒤편의 커다란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요즘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던 내가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인지 알게 됐다.


첫 아이를 낳고 공부를 하고 싶어서 새벽 세시와 네시 사이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이런저런 공부들을 해 온 지 어언 15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분명히 뭔가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삶은 여러 가지로 풍요로워야 할 텐데도,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향해서 엄마의 사랑을 담아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깊이 좌절하고 있었다.


그 좌절은 내가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상실에서 오는 것이자, 제대로 시간을 보내오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50년도 이따위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절망까지도.


그런데, 십자가에 매달린 한 인간이자 신이라는 형상을 바라보다가 이만큼이 내게 남은 것이고, 나머지는 모래알처럼 모두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버렸다는 것이 떠올랐다. 작은 내 두 손안에 놓인 것들은 오늘 내 의식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부이자, 많은 것을 훑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집이자 오만이며 편견이었다. 그 안에서 빙빙 돌면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은 그런 것을 내게 허락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것들 안에서 충실하고 충만하며 감사하는 법을 배우라고 오늘 내게 깨달음을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비록 스스로 기대하는 것만큼 강하지도, 똑똑하지도, 관대하지도, 인간미 넘치지도 않지만, 네! 오늘 제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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