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전환으로 중년의 위기를 통과하기
내게 오래된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는 것.
내가 아주 멋진 사람이고 싶어서
모든 면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누군가 타인 중에서 어떤 면이라도 내 맘에 들기만 하면
나의 멋진 모습만을 봐주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혼자만의 망상에 빠진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내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생활의 활력도 준다.
하지만, 마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초상화가 나 대신 늙어가듯이
내 마음이 나 대신 더욱 초라해지는 것일 텐데
한참 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방어기제가 주는 위안에 빠져 있게 된다.
그러다가,
대상화를 시작한 어떤 지점과 반대되는 지점을 만나게 되고
갑작스레 여러 감정들이 찾아온다.
그러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나르시시즘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것은 결국 시야를 좁게 만들고
에고의 틀을 단단히 만들어
나를 옭아맨다는 것을.
햇빛을 등지고 그림자를 바라보며 빠르게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림자가 머리를 휘날리며 정말 열심히 걷고 있는데
발은 땅에 붙어 한 걸음도 앞서나가지 못하는 그 우스운 모습을…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아가지 못하고
나아갈 수가 없는 것.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간 마치 늪에 던져진 것처럼
삶이 터덕이고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나를 괴롭혀왔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뭔가 잘못된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 괴로움을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고 싶었던지
타인을 마음속으로 끌어들여 대상화하고
그게 주는 밝아지는 마음을 진짜 내 모습이라고도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힘을 뺄 수가 있을 것 같다.
내 에고를 비추던 ‘타인’이라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술거울’은 사라지고,
힘이 빠진 채 시들어버린 느낌으로
그렇게 늪 위에 떠있게 된다.
그렇게 무력 상태로 있음으로써
늪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나의 멋진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
아니면
멋져 보이고자 안간힘을 쓰던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그게 나의 ‘미해결 과제’였나 보다.
마치 타인을 보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방어를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하자
갑자기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학교 공부를 마치는 이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어떤 징검돌을 짚을지도 알겠고,
그걸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알겠다.
마음이 밝아진다. 머릿속도 밝아진다.
제미나이는 인식을 바꿈으로써 원래 존재하던 세상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에피스테메의 전환’이라고.
그동안 주어진 세상을 살기 위해 나를 맞추려 했었다면
이제는 이미 펼쳐진 세상의 어떤 점들을 연결해 가면서 살지 선택해 가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40대를 정리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