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래프(1): 나선형 우상향

from <Sapiens> to <Sapiens>

by 가로등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첫 몇 페이지 넘기자마자 빠져들었었다. 그 책의 두께로만 봐서는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아 보였었고, 7세, 5세 두 아이들을 퇴근 후에도 나 혼자 먹이고 돌보고 재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재잘대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대신 소파 한 구석에 앉아 책장을 넘겼고, 매일 한 시간, 한 번에 100페이지가량을 읽어나가자 일주일이 지날 즈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나랑 나이가 같은 어떤 이는 이런 책을 써내는구나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질투심이 살짝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빅 히스토리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통찰을 끌어내는 모습에 한없이 끌렸고, 이후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역사편람>,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등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이 책을 원서로 읽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7년 차 워킹맘의 자존감을 채워줄 무엇을 ‘영어’로 삼았나 보다. 어쨌든, ‘영어’는 그렇게 다시 나의 실존의 문제로 자리 잡았고 김민식의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으며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한 사십 며칠까지 외우기도 했다. 레몬선생님의 블로그를 만나 본격적으로 그분의 방식대로 따라서 영어를 공부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매일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두세 시간 시간을 가져보려 했으나 그것도 아이들이 새벽에 자다가 깨어 엄마를 찾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2년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게 되면서 내 시간이 생기자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할 수 있었다. 레몬선생님의 프로그램대로 시드니 셸던, 다니엘 스틸, 존 그리샴의 원서들을 합쳐서 40권 이상 읽어나갔다. 미드도 에피소드로만 치면 100개 이상을 봤고, 영한사전 한 권을 통째로 서 너번 밑줄 그으며 읽었으며, 문법을 익히는 시간들로 채워봤다.


그런데도, 인도에서 영어로만 생활하던 그 시절에는 영어로만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순간들이 아찔하게 여겨질 때가 많았고, 영어가 편해진다는 느낌은 들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그다지 만족할 만큼 쉽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의사소통은 되어도 뭔가 미흡한 느낌이 항상 있어 마음 한 구석이 묵직했다.


복직을 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서서히 영어는 멀어져 갔고, 내가 아무리 미련을 가져도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는 언어란 그렇게 존재감이 희미해져만 가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에 대한 알 수 없는 ’ 집착‘에 휘둘리던 중, 체계적으로 영어라는 ’ 언어‘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역시, 방송대는 자가발전의 동력이 되어준다. 언어로서의 배경, 역사, 구조, 쓰임, 문학작품, 사회와의 연결성, 교수법, 심리학, 철학… 등등을 공부하면서 이 언어의 문을 통과하면 더 크고 깊은 세상이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4학년 2학기에 접어들어 공부하던 ’ 고급영문강독‘이라는 과목의 가장 마지막 챕터가 <사피엔스>의 첫 장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일까? 드디어 나는 사피엔스를 영어로 읽게 된 것이다. 외국인이 쓴 영어책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하라리의 스타일이 그런 건지 문장은 길지 않아 읽기는 쉬웠으나,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내가 건너가야 할 또 다른 강이었다. 물론 그런 해자 moat가 있어 내가 어떤 것을 더 읽고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피엔스> 원서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던 때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든 <사피엔스>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한 발자국을 찍고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중이다.


누군가는 원서를 읽을 거면 바로 그 책을 들고 읽었으면 되지 않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방식이 사상누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잘해야 그 책 한 권 읽어내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기초가 없는 집은 쉽게 무너지고, 그런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무한 반복해도 기초가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펀더멘털과 작품이 놓여있는 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양을 축적하고자 했고, 비록 중간에 좌절과 퇴행도 있었지만 결국은 내가 하고자 했던 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영어영문학과 공부를 하면서 그다음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야 하며, 짚어야 하는 디딤돌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삶이란 단면만 본다면 특정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선처럼 역동하며 우상향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내 삶에 대한 ‘믿음’이고,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를 사는 것이다. 비록 오늘이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이 시간들은 ‘축적의 시간’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또 그러므로 오늘 뭔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 삶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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