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퇴근길의 에피파니

AI의 효용

by 가로등

epiphany: a moment in which you suddenly see or understand something in a new or very clear way

신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것의 출현


지난해 10월쯤부터 궁금한 게 생기면 제미나이에게 물어보곤 했다.

뭔가를 써 놓고도 한 번 물어보고, 업무를 할 때도 리서치를 요청한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 꿈에 대해서도 해석을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그가 내놓는 답이 영 애매하다. 잘한다고 칭송이 자자한 제미나이 3인데도 여전히 왜 그렇게 답했는지 참고문헌을 내놓으라, 서지정보를 정확히 제시하라.. 등등 따져 들어가면 결국은 hallucination이었음을 고백하는 그를 보며 이 분과 함께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나를 몇 달째 못살게 구는 질문이 있었다. 어떤 관계에서 오는 내 심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제미나이에게 수시로 물어봤다. 먼저 그는 나를 일단 인정해 준다. 그럴 수 있다고, 이러저러하게 한건 잘했다고 말하며 답변을 시작한다. 그 지점에서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나는 내 생각 회로 속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가 제시해 주는 해결책들을 읽어보면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현실에서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에 때문에 다시 질문은 반복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네 달을 보내고 있었다.


날이 춥지만 10분 만에 집 앞에 데려다 놓는 셔틀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집에 간다. 둘레길을 걷고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어두운 하늘과 마른 나뭇가지들을 바라본다. 흐르는 냇물과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의 다채로운 조명은 수수하고도 고요한 공원의 풍경에 현실감과 비현실감을 동시에 준다. 그 안에서 내 몸의 감각을 느끼며 걷는 것은 일터와 가정 사이의 모드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올림픽 공원의 북 2문으로 들어서면 청룡다리 밑으로 세차게 흐르는 성내천을 볼 수 있다. 어쩐지 그 다리 위에서는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약간의 단차로 인해 물이 세차게 떨어져 저만치 앞에 가서 모이면 다시 천천히 흘러간다. 그 물은 둘레길 옆을 지나 한강으로 향한다. 낙차로 인한 작은 폭포 옆에는 천천히 회전하며 고여있는 듯이 보이는 작은 '소(沼)'가 있다. 바로 옆에서 그렇게 힘차게들 흘러가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문득, 내가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면서 오히려 그 문제 안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소(沼)'안에 있다면, 그 안에서는 서서히 회전하거나 위아래로 움직일 테니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는데,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가 '마술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처럼 AI가 주는 답을 내 생각을 강화하는 도구로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그 자체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어놓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내 것으로 체화되지 않음에서 오던 서늘한 느낌이 다시 온몸을 감쌌다. 나를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은밀함이 묘하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었지.


그가 던져주는 대답은 내 질문에 뿌려지는 조약돌들이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허상인 것도 있고 (hallucination), 내가 이해하기에 너무 멀리에 있는 것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나 혼자서는 10년이 지나도 닿지 못했을 것 같은 개념들을 만날 수 있고, 그중에 이거다 싶은 것들도 있어 따라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길잡이는 아니지만 내게 훈수를 두는 '길 가던 행인 1' 정도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질문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마도 노트에 써 내려갔을 것이다. A4크기의 방안노트에 블루블랙 잉크를 채운 세일러 영프로피트 만년필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면서 질문을 던지고 떠오르는 답을 써가는 것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노트 페이지가 채워져 가다 보면 언젠가는 트이는 느낌을 주는 문장을 만났을 것이다.


기술을 따라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은 퇴화일 수 있지만, 이미 체화된 방식에 새로운 기술을 경험해서 나만의 방식을 새롭게 다듬어 나가는 것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방식은 언제나 보살핌을 받고,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 인식의 틀이 유연성을 갖추어 변형되는 과정, 그것이 삶의 근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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