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6
이번주 <알쓸별잡>도 TV속으로 들어갈 뻔할 만큼 푹 빠진 채 시청했다. 미국의 과학발전과 그 발전을 이끈 이민자들이자 과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9.11까지. 프로그램 끝트머리에 이상욱교수가 "(짧은 시간 바쁘게 다녔지만) 미국은 잘 모르겠다"라고 했던 말처럼, 당신이 모르는데 나라고 더 알리가 있나요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글쎄, 한편으로 나는 TV속으로 들어갈 만큼 재밌게 본 것은 재밌게 알아갔다는 의미이니 나에겐 더하기가 되는 90분이었다. 좋았다. 재방송을 얼른 보고 싶을 만큼. 출연진들에겐 미국을 방문한 시간들이 기존의 알던 것을 그저 상기시키는 정도였거나, 비약할 만한 습득이 되는 시간들은 아닐 수 있었겠다. 하지만 미국을 잘 모르겠다는 말은 뭐라 단정 지어 정의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역사가 그러함을 방송 내내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난 마지막에 출연진들이 모두 가보고 싶어 했다는 9.11 메모리얼 파크와 뮤지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사실 미어졌다.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저자는 미국이 9.11을 추모하는 태도에 얼마나 진심인지 써 내려갔다. 그때만 해도 나의 이해는 추상적이었다. 마음까지 오지 않았다. 9.11에 대처하는 태도를 힘껏 칭찬하며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저절로 부끄러워지는 것을 머리로 알았지만 마음은 그저 안타까운 정도. 그런데 이번엔 9.11 메모리얼 파크와 뮤지엄을 영상으로 보고 출연진들이 할 수 있는 건축적, 구조적, 의미적 해석과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출연진 각자의 해석이 더해져 나는 방송이 끝나고 나서 까지 매우 먹먹했다. 세월호가 생각나서.
2014년 그 당시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인지 세 번인지 법당에서 아침 사시기도를 올릴 때였다. 사시기도는 절의 일상적인 종교적 기도의식이다. 사시기도 중에는 천도의식도 있어 돌아가신 이들을 위한 기도도 있는데,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아 사람들의 마음도 철통을 맨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그때부터 오랫동안 4.16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천도문이 추가되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짧은 한 줄이었지, 어렴풋이 그렇다. 그런데 사시기도를 할 때마다 그 천도문 한줄을 넘는 것이 꽤 오래 어려웠다. 목이 메어 겨우겨우 짧은 순간 마음을 부여잡고 눈을 부릅뜨고 목구멍을 눌러도 흔들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목이 메어 소리가 나지 않고 눈물을 참으려 꿀꺽꿀꺽 애써 침만 삼키는 어떤 날엔 뒤에서 매일같이 사시기도에 함께 하시던 노보살님이 나보다 더 크게 천도문을 대신 읊어주셨다. 노보살님의 소리는 나에겐 그 순간 더없는 안도였지만 자식들을 다 키워내시고 매일 아침 일찍 오셔서 기도를 올리시는 머리가 하얗게 쉔 노보살님의 소리는 또 얼마나 절절한가. 자식을 키운 경험이 없는 나는 그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픔과 비통과 책임을 느꼈다면 자식을 길러낸 부모라는 이름이 붙은 노보살님께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의 깊이의 통증과 더 간절함이 있었겠지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희생자의 가족들은 어떨는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고 이후 내내 우리 사회는 세월호를 두고 더 갈라지고 더 욕하고 더 잔인했다. 정치적일 이유가 없는 국가적 대형사고를 두고 지극히 정치적으로만 대했다. 정치적이라한데도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이 사고는 초당적이고 초이념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방점은 애도하고 기억하고 재발을 막는 것인데, 무슨 이유로 안 되는 논리가 성립하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방송을 보며 9.11에 대처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우리의 태도는 끈적거리게 슬펐다. 표면적으로는 탓할 곳이 나라밖이어서 였을까? 세월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희생자가 생겼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쨋건 눈으로 보니 그 대비는 말로 다 못하겠어서 눈물만 났다. 남편이 옆에 있어 꺼이꺼이 울지는 못하고 소리를 먹었다. 기억하자는데 왜 싸우자 하는가. 우린 언제나 공동의 아픔에 진위를 나누는 대신 기억하는데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