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2.02.03
작년 봄,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제일 설레었던 것은 길 건너에 바로 재래시장이 있다는 점이었다. 시장 구경이 가슴벌렁이게 하는 취향이기도 했거니와 포장 없이 식재료를 살 수 있겠다는 희망 때문이기도 했다. 어쩜 그리도 한 땀 한 땀 식재료마다 포장이 각별한지, 시장이 없던 전에 살던 곳에서는 마트를 가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제일 주저하며 물끄러미 눈으로 먹은 것이 버섯과 두부였다. ‘언제쯤 두부랑 버섯을 맘껏 먹으려나' 자주 생각했었다.
어떤 때는 버섯 포장을 벗기고 장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물론 점원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무게를 재야 해 비닐에 넣어야 한다며 들고 간 용기를 거절당한 적도 자주 있었다. 점점 마음은 소심해졌으니 거절에 대한 당당함도 지녀야 했고, 내 고집만 할 수 없으니 마트 직원을 이해하는 마음도 내야 했고, 어느 때는 포장채로 사고도 너무 자책하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너그러움도 필요했다.
‘비닐, 플라스틱 안 쓰는 게 뭐라고, 내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나' 일상적으로 장을 볼 때 마저 뜻대로 되지 않으니 회의적인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그 회의의 정체는 숫한 시간들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잖아' 하는 생각에 상대에 대한 비난이 생겨난 것이었다. 사실 마트 직원은 마트 운영원칙을 지켜 판매를 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일터란 말이다. 내가 수용해야 하는 범위 안에서 나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면 되는 일인데. 그래야 나 또한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땐 그랬다. 누울 자리를 보며 다리를 뻗는다는 말처럼 경험적으로 포장재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면 들고 간 용기를 내밀어도 보고, 안 되면 그만 두기도 하며 알맹이만 장보는 연습을 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지금은 재래시장에서 자유롭게 포장 없이 식재료를 산다. 두부도 버섯도 떡도 매생이도 달래도… 사장님들도 누구나 흔쾌히 용기에 담아주시니 거리낄 것이 없다. 빈용기들로 장바구니를 채워 나서는 시장가는 발걸음이 지금은 가볍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포장 없는 장보기가 가능한 시장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재래시장보다는 마트가 비교할 수 없이 물건이 많고 가깝고 편하니까. 게다가 소비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니까.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점차 무포장이라는 대안도 확대되지 않을까. 우선 현실의 다양성을 긍정하고 나부터 가볍게 실천해보는 것이 시작일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용기를 들고 장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