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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n 06. 2022

충실할 것

제주여행

22.06.02



여행 끄트머리 이틀은 중산간 오름들을 다니느라 여느 해부터 비싸진 렌터카로 마무리하고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차를 반납했다.




그 이후로는 계획은 그져 계획일뿐임을 증명하듯 그대로 되었다. 전날 통화로 남편과 약속한 오메기떡과 나와 약속한 보리 쑥빵을 사려던 나름 철저한 동선과 시간 계산은 오메기떡이 아직 나오지 않으면서 무용한 계획이 되었다. 역시 너무 계획적이었지. 세상이 네 뜻대로 하라며 나를 기다리려 주진 않지. 세상까지 들먹일 일인가 싶지만 당장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세상을 야속하게 만들었다.무거운 배낭과 이미 사서 무게를 치고 있는 보리 쑥빵을 들고 가장 가까운 떡집을 향해 800미터쯤 걸어 도착을 했으나 어찌어찌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그 카페에서 그 책을 보며 마무리하고 싶었고 그러면 너무 흠잡을 때 없는 나의 여행이 되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내 어깨는 너무 무거웠고, 여행객을 위한 동문시장은 가기 싫었고, 택시도 타기 싫었으며, 오메기떡은 포기할 수 없었으니 몸이 고되 졌다. 몸의 부침은 이제 고집으로 참고 견디는 것에 옛날 같지 않으니 나는 결정했다. 그냥 여행에 충실하기로.




어깨의 무게로 몸이 더 지치기 전에 그 카페로 왔고 역시나 앉을 자리와 밝기의 무게와 음악과 볼륨과 슬라이딩 창을 활짝 열어두고도 방해되지 않는 적당한 소음과 라테 거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편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것에 오롯이 충실했다. 왜 읽냐고, 무슨 소용이냐고 따져 묻지 않고.




여행 첫날의 시작도 마무리도 이 카페에서 하고 있으니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닌가 싶었다. 물론 중간도 그러했다고 말하고 나면 적당히 안 좋은 것이 있어야 말이 되는 인생사에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은 것 같아 도로 뱉어내야 할 것같아 ‘다 좋았다’쓰는 것이 잠시 망설여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지막까지 목적에 충실한 것이 다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 같다. 불면의 밤도, 어이없는 숙소도, 그래서 버린 돈도, 다 하지 못한 일정도, 모두 충실한 나의 여행의 일부였다. 그게 여행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나의 여행에 성실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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