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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n 10. 2022

굳이

22.06.10


팔로우하는 분의 sns 피드를 보는데  글이 진득하게 눈에 들어와 잠시 나를 추게 한다. 일상에서 계획하지 않았으나 '굳이'하는 것에서 발견한 만족과 즐거움에 관한 글이다. '굳이'라니. 이렇게 찰떡같은 표현이 있을까. 굳이 하는 것들은 결국 '굳이 해서 피곤하게 만들었다' 등의 네커티브한 결론으로 치닫기 마련이지 않았나. 그렇게 듣고 자랐고 세상이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렇게 말하고 살지 않았나.




그런데 요즘 나의 하루를 보면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로 살아가는 것 같다. 굳이 오늘 욕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내일 욕실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다. 굳이 돌아오는 주말에 마르쉐에 가 워크숍을 참가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굳이 신청을 해서는 이 책의 서평을 써야 하는 부담을 안지 않아도 나는 살아진다. 굳이 새로 반찬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오늘 먹고 산다. 굳이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아도 외롭지 않던 친구를 이제 만나야 할 필요도 없다. 굳이 이렇게 일상을 메모하지 않아도 내일을 사는데 지장이 없다. 하루 동안 이 굳이를 찾아 적자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빼고 이 말을 붙이지 않을 일이 있을까.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꼭 해야 하는 것들로 살아지는 건 오늘 하루의 어느 정도의 포션을 차지할까. 굳이 뭐하러 하나.. 회의적으로 빠져들 때가 종종 있어서, 그때 어떤 마음인지 알아서,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일어나다가도 그대로 무릎을 괴고 앉을 때가 있어서, 그 기분이 어떤지 알아서 '굳이'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그 '굳이 하는 것들'을 캘린더에 적고 하루 동안 해나가며 클리어하는 재미가 생겼는데, 시작할 땐 사소하다고 생각했다.


기도

배변

요가

바질 페스토 만들기

관리비 이체

땅콩까기

수건 삶기

사전투표

엄마 약 주문

텃밭 들여다보기

등산

도서관 책 반납

배추 사기

정수기 점검




그런데 그렇게 굳이 하는 것들로 하루가, 기억이, 마음이 채워지고 있었다. 굳이 하는 것들로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인생은 굳이 하는 것들로 채워진 별것 아닌 것이기도 하여 굳이 하는 것들을 놓치고는 가까워지지 않는 먼산을 동경하는 안타까움을 나는 이제 짓지 않으려고 한다. 굳이 하는 것들이 오늘 하루였다. 그래서 실상 '굳이하는 것'이 굳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굳이'라는 표현으로 순간순간을 충실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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