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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May 18. 2023

깡통전세라니

23.05.18



지금 우리 집은 그 유명한 깡통전셋집이다. 2년 전 성남토박이 나는 낯선 인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비록 그 당시 전에 없던 전세난을 뚫고 겨우 구해 들어온 지금의 빌라가 지금은 그 유명한 미추홀구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해야 했다. 물론 오늘로써 1년간 불안을 안고 있어야만 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하는 소리다. 하지만 미추홀구였다면 더 악덕의 빌라왕에게 걸려들어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하지 못할 수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매일같이 뉴스에서 빌라왕을 불러젖히면 없는 촉까지 발동하곤 했다. 어디에도 손내밀 때가 없는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을 볼 때면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전해졌다. 손내밀 때가 없는 게 아니라 손잡아주는 곳이 없음이 더 명확했다. 겪어보니 그렇다. 그래서 욕이 절로 나오는 거다.




살아보니 참 살기 좋은 동네다.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아무리 새빌라라도 겉만 번지르 하지 집의 마감이 형편이 없었다. 전세보증금이 너무 높았던 지라 집이 노후될 테니 전세계약을 연장하지 말고 이사하자는 남편과의 합의를 했다. 이사 온 지 1년도 되지 않아서였다. 인천집을 알아볼 당시는 전국적으로 역대급 전세난에 전세보증금이 너무나 높았다. 세입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매물이 없어, 돈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들여다볼 집자체가 없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전세보증보험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세입자는 지켜야하니까.




남편도 나도 전세로 이사를 다녔지만 처음 듣는 낯선 말. 그런데 지금의 집에서 전세연장을 하지 않고 뺄 생각을 하니 더욱 이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우리 부부가 같이 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약속과 달리 보증보험을 들어주지 않았고. 우리는 감정평가사를 별도로 불러 집을 감정받고 그것을 근거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을 완료했다. 이사 온 지 1년이 조금 넘어서였다. 집의 감정평가금액은 우리의 전세보증금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으니 그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 않았겠나.




그런 후 깡통전세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천의 미추홀구가 먼저였는지 빌라왕이 먼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점점 조직적인 부동산 범죄로 드러나는 깡통전세는 우리 부부의 서로 말 못 하는 불안거리가 되었다. 재수 없어 일어나 사고가 아니었다.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범죄였다. 점점 피해자가 드러날수록, 안타까운 죽음이 벌어질수록 속속들이 까발려질수록 우리 집의 상황에 퍼즐처럼 맞아 들어갔다. 집주인과 전세만기 6개월 전에 계약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통보를 위해 전화통화 후 집주인과 연락이 되질 않았다. 집에 누수하자가 생겼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아주 젊은 집주인의 태도와 몇 번의 통화경험으로 우린 감을 잡았다. 불안이 현실이 되겠구나.




그 후로 깡통전세는 한동안 뉴스메인이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아준 게 고마울 지경이다. 만약 이때부터 불통이었다면 우리가 가입한 전세보증보험은 무용지물이 되니까. 남편은 집주인과의 통화는 모두 녹음을 해두었고, 속기해 공증을 받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세입자로서 구제받기 위한 모든 법적의무사항을 이행했다. 그런데 불안했다. 아무리 구제받기 위한 정보를 찾아 그대로 이행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모르는 틈새가 있을 것 같았다. 절대 이 법이 모든 세입자를 위하지 않음을 몸소 느꼈다. 피해자는 회사 반차, 월차를 쓰며 감정사, 변호사, 법원, 구청, 허그(HUG)를 쫓아다녀야 했다. 그러는 사이사이 미쳐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걱정의 틈새들을 치뤘다.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나의 보증금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세입자는 전세만기 후 한 달 후부터 허그에 사고접수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 달 사이에 임대인이 보증금을 준비할 수 있을 시간을 준다는 명분이었다. 우리는 전세를 빼기 위해 일 년 동안 준비했고, 이미 6개월 전에 이사의사를 통보했고, 이사의사를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으로 3번이나 밝혔다. 물론 내용증명을 임대인은 3번 다 수령거절했다. 예상은 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이 모든걸 해야 했다. 법적전세만기를 합법적으로 다시 한 달 연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쉬운 건 세입자이므로 그렇게 또 한 달을 기다려 법원으로 허그로 사고접수를 위한 절차들을 밟았다.




허그에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고도 보증금을 지키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아 나에게 행운이 올까,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회적 범죄 안에 걸려들었구나하는 현실직시로 전개되었다. 이후 나는 멘털을 살피는 준비를 했다. 보증금을 모두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다. 다 지킬 수 있다면 땡큐, 그렇지 못하더라도 다 잃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미리 멘털을 다 잡았다. 그렇게도 살아진다, 그렇게. 우리가 할 일을,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므로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걱정하고 불안에 싸여있는다고 상황이 달라질일이 아님을 잘 알았으므로 미리 긍정하지도 너무 비관하지도 않으며 기다렸다.




허그에 사고접수완료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는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국토부장관은 깡통전세피해자 구제대책이라며 와글와글 거리며 뭔 소리를 해댔지만 우리 부부는 알았다. 멍뭉이 소리라는 걸. 세입자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왜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목청이 더 높았졌는지 알았다. 그래서 심사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건 몰랐지?' 하며 문턱에서 발을 걸어 넘어뜨릴 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 제도와 정책에 비관적인가? 전혀. 9천만 원에 목숨을 끊은 젊은이가 어떤 막막함을 안고 갔을지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 우리 부부는 심사가 완료되었고 보증금 전액을 지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애쓴 남편에게 축하와 고마움을 전했다. 원래 그런 성향이라 그동안 본인의 불안을 내색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래도 어떤 날은 불안으로 공기를 무겁게 하는 날에 아마도 나는 속도 모르고 불평하던 날이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적인 남편에 기대서 나는 나를 지키려고 조금 더 노력했다. 그게 우리를 위해서는 더 유익하다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충분히 전해야 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만 다행이어서는 안되는데. 피해자들이 구제되길 기도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을 세입자가 스스로 피해가야 한다는 현실은 답답하지 않은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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