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년의 시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by 가령
소년의 시간.jpg


기본 정보

연출: 필립 바랜티니
각본: 잭 손, 스티븐 그레이엄
공개: 2025.03.13
장르: 범죄, 스릴러,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가: 영국
회차: 4부작


같은 반 친구의 살해 용의자가 된 13세 소년. 그의 가족과 심리 상담사, 형사는 모두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에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시청하게 된 드라마 <소년의 시간>. 처음에는 살해 용의자를 찾아가는 추리극인가 싶었는데 그런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물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줄거리 자체는 간단히 요약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만큼 그리 장황하진 않았다. 회차당 1시간 정도로 구성된 총 4부작 드라마다 보니 분량 자체가 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우리와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가 녹아 있었다.


드라마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원테이크 촬영 기법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보고 나니 원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의 전환이 참 자연스러웠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전환 방식으로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잘 표현해 냈다. 1시간 분량의 원테이크라니. 모든 회차를 어떻게 기획하고 리허설하고 촬영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겠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테이크 덕분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고, 영상미도 좋았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 속도감 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한다면 중간중간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시간>은 13세 소년 제이미가 같은 반 친구 케이티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제이미네 집은 쑥대밭으로 변하고, 제이미는 구금된 채 조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이미는 자신이 케이티를 살해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제이미의 행적과 SNS를 살피며 의문을 제기하고 CCTV 영상까지 제시한다. 해당 CCTV에는 제이미가 케이티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제이미가 체포되고 조사를 받는 모습을 보며 '정말 저 어린아이가 살인을 저질렀을까'라는 생각에 무언가 반전이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폭행 영상이 확보된 상황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고, 이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싶었다.


담당 경찰들은 제이미의 학교에 방문해 또 다른 증거를 얻고자 한다. 담당자의 인솔 하에 학생들, 교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 하는데 학교 분위기가 너무나도 엉망이다. 어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장난을 친다거나 거친 말을 내뱉는다거나 하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의 물음에 대놓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도 볼 수 있다. 따돌림 문제도 존재한다.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 이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는 학습 분위기였다. 시청자인 나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문제로 봐야 할지 어지러웠는데 극 중의 경찰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진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이곳의 10대들 사이에서 '인셀'이라는 게 확산된 상태였던 것이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를 칭하는 말이다. '비자발적'이니 자의에 의한 상황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인셀로 인식하든 타인에 의해 그렇게 여겨지든 심한 영향을 받으면 여성 혐오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관련 범죄, 테러도 여러 차례 있었기에 해외에서는 인셀을 사회 문제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젠더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이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제이미는 케이티에게 인셀로 배척받으며 괴롭힘 당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 케이티와 갈등이 있던 것인데 제이미가 인셀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심리상담사와 대화를 나눌 때 여성 상담사를 은근히 무시하며 자신이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80:20 법칙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80%의 여성이 상위 20%의 남성에게 끌린다는 식이었다. 심지어 상담 중 여러 차례 분노 조절에 실패하고 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정한 문화, 그릇된 인식이 한 사람을 돌변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인셀은 심각한 문제였다.


제이미는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고, 본 재판 전까지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하게 된다. 그동안 가족들 역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범죄자의 가족들이 타인에 의해서 고통받고, 스스로도 마음 편치 못하게 지낸다는 걸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진실이 대체 뭐길래 몇 개월이 지나도록 결론이 안 난 거지 싶었는데 결말에 가까워질 즈음 제이미가 유죄를 인정하는 쪽으로 주장을 바꾸겠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제이미가 그런 게 맞았다고? 범행과 관련된 명확한 증거라 할 만한 게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제이미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 다른 진실이 있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진술을 번복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되기도 했다. 어쩌면 열린 결말인 건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증거가 있는 것도, 재판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여운이 상당했고,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대체 무엇이 그 어린 소년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인셀처럼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자리 잡힌 문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제이미의 부모는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10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른들의 이야기보단 친구들이 더 중요할 시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이미의 경우에는 아빠에게서 받은 영향도 조금은 있겠다 싶었다. 아빠와의 유대가 깊어 보였는데 제이미가 상담사에게 욕하며 욱할 때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는 없어도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있다. 사회 역시 특정 집단 내의 문화가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SNS가 발달된 요즘 특히 주의를 기울어야 할 텐데 청소년들 스스로 조심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게 쉽지 않으니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소년의 시간>은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하고 있다. 총 4시간 정도로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