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면서 개인으로, 따로 또 같이 살아간다는 건
연출: 션 헤이더
각본: 션 헤이더
개봉: 2021.08.31
장르: 드라마, 음악, 가족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국가: 미국, 프랑스
러닝타임: 111분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
길었던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며 영화 <코다>를 보았다. 제목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의미한다고 한다. 청각 장애를 지닌 가족의 이야기를 잘 그려낸,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또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 감독이 참여한 음악 영화이기도 해서 더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개인의 성장 과정 속에 잔잔하면서도 짙은 감동이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한 수어통역사분의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주인공인 루비는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이다. 그녀의 부모님과 오빠는 모두 농인이다. 그래서 루비는 새벽마다 아빠와 오빠를 도와 함께 고기잡이 일을 한 뒤 학교에 간다. 이처럼 성실한 루비인데 학교에서는 은근 따돌림을 당한다. 가족이 모두 농인이고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루비는 마일스라는 남학생을 남몰래 좋아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고기잡이 일까지 묵묵히 해내는 루비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그러다가도 짝사랑하는 남학생을 따라 합창단에 들어가는 걸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환경이 그렇다 보니 또래 아이들에 비해 빨리 철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아직 풋풋한 모습이 남아있는 듯해 아주 살짝 마음이 놓였다.
루비는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하다.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온 기억 때문에 다소 위축된 듯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루비는 합창단 담당 음악 선생님인 미스터 V의 지도 하에 이런 모습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그러다 재능을 인정받고, 마일스와 함께 듀엣 무대를 준비하게 된다. 미스터 V의 설득으로 버클리 음대 오디션까지 도전해 보기로 한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기 두려워하던 루비가 어느새 합창단 생활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화해 나가는 그 과정을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된 삶 속에서 그녀에게 힐링이 되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했다.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노래를 하는 루비를 보면 참 흐뭇했다.
그런데 루비의 집은 그녀가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루비는 미스터 V에게 지도를 받으며 버클리 오디션을 준비하지만, 집안 사정은 점점 어려워져 간다. 중간 상인 단체와의 마찰로 인해 고기잡이 관련하여 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만다. 루비는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한 청인으로서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루비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보니 미스터 V와의 약속에도 매번 지각하게 되고, 홀로 노래 연습을 할 시간도 부족하기만 하다. 상황이 정말 복잡하게 흘러갔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해 왔는데 그런 그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꿈만 좇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질적으로 가족에게도 루비가 필요한 게 맞았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 대목이었다.
당장의 생계에 있어 루비가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가족 역시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지 못한다. 이에 따라 루비와 가족 간의 참고 참았던 갈등이 터지고 만다. 꿈을 향한 마음이 커진 루비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가족에게 언제까지 자신이 그들 곁에 있어야 하냐며 화를 낸다. 그렇게 가족과 다툰 뒤 루비는 다음날 고기잡이에 나가지 않는데 하필 그날 사건이 발생한다. 농인이라 해양 경찰대의 통신 소리를 듣지 못한 아빠와 오빠가 면허 정지에 큰 금액의 범칙금까지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루비는 결국 자신의 꿈을 뒤로 미루기로 결심한다. 루비에게도, 가족에게도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쯤 되니 루비가 태어나기 전에는 세 식구가 어떻게 생활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루비의 할머니, 할아버지 등 다른 가족과 함께했던 걸까.
이와 관련해서 오빠가 루비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리 가족은 잘 살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꿈을 접어두겠다는 루비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루비의 부모님은 철이 없어 보일 때가 종종 있었지만, 오빠는 그렇지 않았다. 장남으로서 동생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해내고 싶어 했다. 루비가 가족을 위하는 만큼 오빠도 마찬가지였던 거겠지. 루비는 보탬이 되고 싶고, 오빠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음대 오디션은 포기했지만, 합창단 공연 준비는 이어간 루비. 공연날 루비의 가족도 그녀를 보러 온다. 부모님과 오빠 모두 노래를 듣지는 못해도 주변 반응을 통해 루비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결국은 루비가 버클리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데려다준다. 루비는 오디션장에서 가족을 위해 수어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버클리에 합격하게 된다. 부모님이 루비를 떠나보내려는 결심을 하기까지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결정을 내린 뒤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여러 고민을 하며 루비의 가족이 한층 더 성장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모두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아직 아이인 루비를 어떻게 떠나보내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빠가 루비는 애였던 적이 없다고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게 그간의 루비를 잘 표현해 주는 말 같았다. 루비는 어려서부터 가족들을 챙겨야 했던 만큼 그만한 책임감을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 물론 그런 루비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많이 느껴왔겠지. 그래서 마지막 결정에 남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가족도 루비 없이 생활해 보려는 용기를 냈고, 루비 역시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질 용기를 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모두가 성장한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