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불신 그리고 통제
연출: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각본: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개봉: 2025.04.02
장르: 공포, 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가: 미국
러닝타임: 111분
외딴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에게 집주인은 믿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꺼낸다. 무언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두 소녀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게 된다. 친절했던 남자는 돌변하고, 그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
작품이 풍기는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이끌려 시청하게 된 영화 <헤레틱>.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집안에서 벌어지는 심리 게임 같았다. 집이라는 곳으로 장소가 한정되어 일종의 방탈출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탈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전략, 게임, 추리 요소와 종교적인 내용의 스토리텔링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나는 무교에 종교적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인지라 관련 내용을 100%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종교인이거나 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모르몬교 선교사인 시스터 반스와 팩스턴. 이들은 전도를 위해 리드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리드의 친절한 태도와 집안의 따스한 분위기가 두 소녀를 반긴다. 그런데 리드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신학에 관심이 많아 보이던 리드는 점차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며 소녀들의 깊은 신앙심을 건드린다. 그러면서 자신은 운이 나쁘게도 유일하게 진실된 종교를 찾아내고 말았다고 덧붙인다. 이에 반스와 팩스턴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느낀다. 이러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이들은 도망치기로 결심하는데 현관문이 잠겨 열리지 않는다. 설상가상 휴대폰까지 터지지 않는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리드를 좋은 사람인 듯, 수상한 인물인 듯 헷갈리게 표현함으로써 미스터리함을 극대화했다. 그러다 꺼림칙한 느낌이 짙어져 갈 때 극의 몰입감도 함께 높아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리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결국 반스와 팩스턴은 리드에게 이제 가봐야 하니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리드는 아무렇지 않게 뒷문으로 나가야 한다며 2가지 문 중에 고르라고 한다. 양쪽 다 지하로 이어지는 문인데 리드는 힌트를 주겠다며 한쪽 문에는 믿음, 다른 문에는 불신이라 적는다. 그리고 여러 종교를 모노폴리 보드게임에 비유하며 본심을 드러냄으로써 반스와 팩스턴의 믿음을 흔들어놓는다. 이에 반스는 리드의 주장을 반박, 그렇게 말해도 우리의 신앙심을 흔들리지 않으니 믿음을 택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반스와 팩스턴은 함께 믿음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소녀와 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하게 반응하는 리드가 서로 상반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리드의 모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는 현 종교들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없으며 참된 종교들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리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종교는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모노폴리는 지주게임을 변형하여 만들었고, 라디오헤드의 <Creep>은 홀리스의 <The Air That I Breathe>를 표절하여 만들었다. 기독교, 이슬람교, 모르몬교 등의 종교들도 결국은 유대교를 변형시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지주게임보다 모노폴리가 더 인기 있듯이 유대교 신자보다 기독교 신자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선교자들을 활용한 영업, 홍보를 더 잘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간 반스와 팩스턴은 지하실에 갇히고 만다. 리드의 집은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지어진 곳이었고, 두 소녀는 리드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중이었다. 반스와 팩스턴은 리드가 짜놓은 판의 말이 되어 움직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두 소녀에게 리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예언자라는 이를 소개하고, 예언자가 죽은 뒤 부활하는 광경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실제로 이를 증명해 내는데 반스는 해당 현상을 반박하려다 리드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대신 팩스턴이 그의 트릭을 정확히 간파해 낸다. 나는 반스가 더욱 주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팩스턴이 비밀을 풀어내서 놀랍기도 했다. 신앙심이 좀 더 깊은 만큼 수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인 팩스턴이 직접 상황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며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리드의 주장처럼 신학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이야기인가 싶었으나,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얻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는 점을 팩스턴이라는 인물로 표현해 낸 것 같았다.
팩스턴은 계속해서 탈출을 위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드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는다. 그녀 자신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리드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라는 걸. 리드가 말하고자 했던 유일하게 진실된 종교는 '통제'라는 것을 말이다. 리드에 의하면 종교는 하나의 통제 시스템에 불과할 뿐이다. 팩스턴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리드를 미리 챙겨놨던 뾰족한 편지 개봉 도구로 찌른 뒤 도망간다. 하지만 리드의 집 구조는 그야말로 지옥도 같았고, 팩스턴은 결국 다시 지하실로 돌아오게 된다.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온 리드는 팩스턴의 배를 칼로 찌른다. 둘은 피를 흘린 채 쓰러지는데 리드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고 비웃는다. 이때 팩스턴이 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기도의 효과를 실험한 얘기 알아요?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만 기도를 받게 한 거죠. 결과는 명확했어요. 효과가 없다는 거죠. 그래도 서로를 위한 기도는 아릅답다고 생각해요.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안다고 해도요. 잠시라도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게 당신이라도요. 지금까지 제게 주신 시련에 감사드리며 제게 주신 이 길에도 감사드립니다."라는 기도였다.
리드는 그런 팩스턴을 완전히 죽이고자 하는데 그 순간 반스가 깨어나 리드를 처치하고 다시 쓰러진다. 그 덕분에 팩스턴은 집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팩스턴이 기도를 한 이후 기적처럼 반스가 잠시 부활해 그녀를 도와주는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다. 기도의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팩스턴은 진실로 신앙심이 깊은 신도였다. 결국 <헤레틱>은 종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완전히 불신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떠한 믿음을 갖는지에 따라 희망을 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종교를 지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용적으로 할 말이 많을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따라 불쾌한 장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나처럼 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추리, 스릴러, 게임 관련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볼 만한 영화이다. 반스와 팩스턴의 각기 다른 결말, 나비의 의미 등 해석할 거리도 많기 때문에 영화 <헤레틱>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