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덕희

통쾌해서 더 씁쓸한 이야기

by 가령


기본 정보

연출: 박영주
각본: 박영주
개봉: 2024.01.24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가: 한국
러닝타임: 114분


내 돈을 사기 친 그놈이 구조 요청을 해왔다! 세탁소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생활력 만렙 덕희에게 어느 날, 거래은행의 손대리가 합리적인 대출상품을 제안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요구한 손대리에게 돈을 보낸 덕희는 이 모든 과정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뒤늦게 인지하고 충격에 빠진다. 전 재산을 잃고 아이들과 거리로 나앉게 생긴 덕희에게 어느 날 손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데… 이번엔 살려달라는 전화다! 경찰도 포기한 사건, 덕희는 손대리도 구출하고 잃어버린 돈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필살기 하나씩 장착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직접 날아간다.




이 세상에는 여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드라마틱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바로 <시민덕희>이다.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라인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누군가가 겪은 특별한 이야기에 각색이 더해져 더욱 극적인 영화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성이 사라진 작품이라는 건 아니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한 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이렇게 보이스피싱의 실상을 잘 보여준 대목에서는 씁쓸한 현실을 맛볼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다. 평소 거래하던 은행의 손대리로 위장한 재민에게 속아 3,200만 원을 잃고 만 것이다. 안 그래도 가진 돈이 없었던 덕희는 도움을 청하려 경찰서에 신고도 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경찰은 콜센터 위치가 중국이고, 별다른 단서도 없어서 잡지 못한다고 답한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김성자 님도 경찰로부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하셨다. 피싱범에게 수차례 전화해 욕을 하거나 대포 통장을 신고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고. 보이스피싱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데 이를 막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무력감이 느껴졌다. 피해 경로가 다양해지다 보니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피해자들이 구제받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덕희 말고 또 다른 피해자도 있었다. 바로 그녀를 속인 재민이다. 그는 고액의 알바 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행을 결정했는데 그곳에 감금된 채 강제로 보이스피싱을 하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재민은 덕희에게 전화해 대리 신고를 부탁한다. 실제 김성자 님께 내부 고발을 했던 사람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도망간 지명수배자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이' 보이스피싱을 하게 되었다는 설정을 넣음으로써 미화하여 표현한 것인데 덕희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았다.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람이 알고 보니 다른 범죄의 피해자였고, 이제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재민을 마음껏 원망할 수도 없었겠지.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했든 그렇지 않든 범죄에 가담하게 되면 그에 따른 책임은 져야 하는 만큼 재민을 무조건 감싸주기란 힘든 일이다.


덕희는 여러 이유에서 재민을 도와 총책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재민은 최선을 다해 건물 내부 사진, 피해자 리스트 등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내준다. 한편 경찰은 수백 장의 자료를 받고서야 움직인다. 그 전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덕희가 다 떠먹여 주니까 믿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더 심했다고 한다. 김성자 님께서 어떠한 정보를 알려주면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고, 그래서 해당 정보를 알려주면 또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결국 김성자 님께서 전화비가 약 70만 원이 나올 정도로 통화를 하며 자료를 모았다고 하셨다.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이나 허위 신고도 많겠지만,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을 수 있는 기회에 그런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경찰 관계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개인적으로 수사를 해야 했다는 게 조금은 답답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덕희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녀의 눈앞에서 총책이 검거된다. 이후에 총책이 덕희에게 합의금 3억을 제시하지만,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거절한다. 이게 이 영화의 엔딩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김성자 님의 노력 덕분에 총책 검거에 성공한 건 동일하나, 김성자 님은 경찰로부터 총책이 검거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하셨다. 담당 경찰 측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공으로 돌린 채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섣불리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건 그렇다고 쳐도 이러한 나 몰라라 식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성자 님께서 중간에 포기해 버렸다면 거기서 끝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처럼 영화는 나름 통쾌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에 가려진 현실은 참으로 씁쓸했다.


<시민덕희>는 극적인 각색이 꽤 포함된 작품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유쾌하면서 의미 있는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재민의 이야기도, 덕희가 직접 칭다오에 간 일도, 총책 검거 과정도 영화적으로 연출되었다. 또 경찰의 모습도 실제보다는 덜 밉게 풀어내었다. 각색이 없었다면 <시민덕희>는 더 마음 아픈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저 범죄자일 뿐인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고 총책을 잡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여 검거에 성공했는데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성자 님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영화가 제작된 후에야 그 공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인정을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총책을 잡은 직후에 인정해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함께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 더 이상은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범죄를 막을 순 없겠지만, 덕희가 겪은 보이스피싱이나 재민이가 겪은 사기 사건 등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위험에 유의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적절히 대응해 주기를 바라 본다. 이렇듯 <시민덕희>는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남긴 작품이다.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실제 이야기 역시 영화와 함께 보면 유의미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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