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힘, 사랑
연출: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구스타프슨
각본: 기예르모 델 토로, 패트릭 맥헤일
개봉: 2022.11.23
장르: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국가: 미국
러닝타임: 117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강력한 사랑의 힘이 펼쳐진다.
<피노키오>라는 동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책으로 읽었던 게 마지막이었던 터라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 담긴 희미한 줄거리 정도만 생각날 뿐이었다. 그렇게 추억의 동화가 되어버린 작품을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스톱모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원작을 재해석하여 담아낸 것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시청한 후 예전에 보았던 동화를 다시 찾아보았는데 이 영화가 기존의 작품보다 생각할 거리를 여럿 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어른이 된 만큼 시야도 넓어져 이야기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제페토는 전쟁으로 아들 카를로를 잃고 힘들어하다 술에 취해 피노키오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푸른 요정의 힘으로 생명을 얻게 된 피노키오에게 카를로처럼 착한 아이로 살아달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피노키오가 계속 말썽을 부리자 '네가 카를로와 같지 않다면 나에겐 짐일 뿐'이라는 식으로 화를 낸다. 이때의 제페토는 아들에 대한 지나친, 그래서 조금은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다. 피노키오는 분명 카를로와 다른 아이인데 그의 대용품인 것처럼 대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피노키오를 만든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를로가 피노키오로 다시 태어난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지켜야 할 선은 필요하다.
다행인 건 제페토가 홧김에 막말을 한 다음 날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사이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버린다. 단장과의 계약에 따라 서커스 공연을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제페토에게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단장이 그렇게 해 주지 않자 중요한 공연을 망쳐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는 아빠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영생과 마지막 목숨마저 포기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피노키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일종의 모험을 떠나게 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부모를 좋아하는 철부지 아이에서 제페토의,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줄 아는 정도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귀뚜라미 세바스티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캔들윅에게 전하며 그를 위로할 때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빠들도 절망할 때가 있어.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 하는 말들은 그 순간에는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혀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돼."라는 말이었다.
피노키오는 친구와의 우정까지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만난 이가 캔들윅이다. 청소년 군 캠프에서 우정을 나눈 둘은 상대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훈련에서 무승부를 만들어버린다. 이를 본 캔들윅의 아버지 포데스타 시장은 분노하는데 그는 열렬한 파시스트이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항상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싸울 것, 모범적인 이탈리아인이 될 것을 강요한다. 영생을 가진 피노키오가 군인이 되어야 한다며 군 캠프로 데려간 것도 포데스타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알 순 없겠지만, 그 모습은 참혹하게 느껴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아들도 냉혹하게 대하는 포데스타의 모습이 유독 그랬다. 피노키오와의 대화로 깨달음을 얻은 캔들윅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것을 이야기하지만, 포데스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한다.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보여주는 부자 관계와 달리 포데스타와 캔들윅의 관계에서는 사랑도, 개선의 여지도 없다는 뜻이지 않을까 싶었다. 캔들윅만 내적 성장을 겪은 채 마무리되었으니 말이다.
포데스타와 유사하게 끝을 맞이한 인물이 또 있는데 바로 서커스 단장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피노키오라는 존재를 탐내던 단장은 결국 모든 걸 잃고 만다. 어떤 형태의 사랑도 없다면 그 관계와 상황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하던 원숭이 스파자투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피노키오의 편에 선다. 그도 그럴 게 스파자투라가 피노키오를 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노키오는 그가 단장에게 협박과 폭력을 당하자 나서서 구해주었다. 순수한 마음 때문에 피노키오가 그렇게 행동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스파자투라와 친구가 되면서 둘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피노키오의 선한 영향력으로 스파자투라 역시 단장에게서 벗어날 용기를 갖게 되었고, 이를 실현하여 둘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났다는 걸 떠올리면 그랬다.
이처럼 다양한 이들과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장한 피노키오는 추후 제페토와 재회한다. 그리고 제페토는 피노키오에게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고 네 모습 그래도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며 해피 엔딩을 맞이한 것이다. 피노키오의 삶에 방해가 되는 주변 인물들도 있었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여 결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아마 피노키오 자신의 노력과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긍정적인 요소들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무솔리니 시대였던 만큼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해석을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인간의 삶이 귀하고 의미 있는 건 그 삶이 짧기 때문'이라는 죽음의 요정의 말처럼 우리 모두 스스로의 삶을 잘 가꾸며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