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에서 범죄자가 되기까지
저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번역: 최필원
출판: 오픈하우스
발행: 2017.06.30
‘도끼’를 의미하는 ‘액스(The Ax)’는 은유적으로 ‘정리해고 행위’를 뜻한다. 흔히 ‘잘렸다’고 하는 바로 그 표현이다.『액스』는 제목 그대로 대량 인원 삭감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한 중산층 남자가 해고로 인해 어떻게 피폐한 삶으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리고 재취업을 위해 어떻게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가는지 두 축의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해 간다.
올해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줄거리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원작을 먼저 본 후에 영화를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해당 소설을 구입해 읽었다. <액스>는 많은 이들이 몰입하여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경쟁 사회, 경쟁 체제를 경험해 보았거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이야기였다. 실직자가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고 있어 특히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인공에게 더욱 이입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공이 행하는 일들은 비현실적일지라도 주인공을 둘러싼 외부 환경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액스>의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평범한 미국 중산층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23년간 일한 제지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후 2년 정도 구직 활동을 이어가지만, 좀처럼 취직이 되지 않는다. 생활만 계속해서 어려워지자 결국 자신이 직접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제지회사의 가짜 구인 광고를 잡지에 실어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모은 후 자신보다 좀 더 뛰어나거나 자신과 유사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버크는 그렇게 그들을 한 명씩 살해하고 만다.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에서 정리해고 바람이 일던 199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초반쯤이다. 그렇다 보니 버크 역시 취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살인이라는 건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강력한 범죄이지만, 버크의 상황도 이해가 되어 그를 마냥 혐오스럽게 볼 수만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살해를 저지르는 도중 버크는 아내의 외도와 아들의 절도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내의 외도 문제는 그것대로, 아들의 절도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직과 그로 인한 생활고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경쟁자들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버크가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버크의 심리가 효과적으로 묘사되어 그의 이야기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살인 초반에는 버크도 죄책감을 크게 느끼지만, 이후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점점 살인에 익숙해졌다. 평범한 직장인이 진정한 살인자가 되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또 참혹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인을 이어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기도 했다.
버크의 계획은 이상할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된다. 위기의 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버크는 끝내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는다. 그리고 원하는 회사에 합격 1순위 지원자로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살인자가 된 버크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다른 범죄자보다 너그러운 시선에서 그를 바라보았던 건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인을 미화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열린 결말은 '그렇게 부당하게 얻은 삶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듯했다. 그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든 세상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결말 부분에서는 버크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었다. 원하는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면접을 보러 가는 건 맞지만, 최종적으로 합격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그가 삶을 바로잡아 행복해졌는지도 여전히 실직 상태로 머물러있는지도 모른다.
버크가 살인자가 되어야 했던 그 상황들은 이해되었지만,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의 앞날을 응원할 순 없었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의 처지만큼이나 살해된 사람들과 주변인들의 처지도 처참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해야 했던 그들이 더욱 비참한 걸지도 모르겠다. 버크는 '이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되었다', '회사가 정리해고로 내 인생을 앗아갔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인생을 되찾기 위해 살인을 하면서까지 취업에 성공하려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살인이라는 수단이 정말 자신의 인생을 위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살인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이었는지, 제지회사에 취업하는 게 살인을 불사할 정도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순 없었을까.
우리 사회도 경쟁이 치열하고,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고 있다. 뉴스에서 호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긴 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버크의 입장이 공감되기도 했다. 정리해고 당한 버크, 살인자가 된 버크, 살인을 당한 사람들 등을 떠올리면 사회에서 개인에게 치열한 삶과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인이나 다른 범죄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기에 부당함에 대한 분노나 목표에 대한 간절한 마음 같은 것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발현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액스>라는 작품을 박찬욱 감독님이 한국 영화로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