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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y 20. 2021

기분상쳤다!!!!

-은밀하고 엉뚱한 나만의 주식 이야기-

 내 주식의 시작은 오로지 남편과 주변 선생님들 덕이다. 예전에 나 몰래 주식을 하다가 나의 노골적인 방해와 얼름으로 은근슬쩍 그만뒀던 남편에게 '그래, 한 번 해봐라' 하며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비 통장에서 출자해 준 건, 모이기만 하면 기승전결 주식으로 끝나는 나의 사적 모임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절친인 K양이 그동안 나름의 기준으로 은밀한 사적 주식 생활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직후였다.

 한동안 귀동냥으로 듣기만 했다. 대부분 우량주를 위주로 하는 선생님들의 주식 생활은 건전했고, 안전했으며 시사와 경제에 많은 관심을 가진 한탕주의와는 거리가 먼 성실한 투자였다. 다들 십 년 이상 주식을 공부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차곡차곡 주식 자산을 쌓아오신 분들이어서 재미로 해볼까 하는 나에게 주식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는 우리 임 선생님의 조언이 있던 터였다. 임 선생님께선 나에게 할 일도 많고 에너지가 다른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가능한 하지 말라 권하셨고, 박 선생님은 S 주식부터 하나씩 사서 노후에 한 주 팔고 여행 가고 한 주 팔고 커피 마시자며 장기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 K양과 주식 한 탕에 출자금 반을 갚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선생님들께 계속 물어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으니 나와 가장 가깝고 주변에 항상 포진해 있는 그들을 나의 주식 동반자로 점찍은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의 주식 물주(?)요, 희생양들이었다.  


 주식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도 천지차이였다. 이상하게 남편은 계속 내가 주식하기를 바랐던 것처럼 자꾸 해 보라고 옆구리를 찔렀고, 동생은 '하지 마라' 쩝쩝 입맛을 다셨다. 돈도 잃고 마음도 다친다면서. 이런 상황인데도 계좌 하나 터보겠다고 은행 가서 이혼할 뻔했고 둘이서 울그락 푸르락 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터였는데 주식을 하라는 신의 계시였는지 갑자기 문자로 계좌가 만들어져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은행을 찾아가고, 상담원 통화를 하고 남편과 씩씩 거리며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 다할 때는 만들어지지 않았던 계좌가 난데없이 '떡' 하니 만들어졌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했다.


기대 반 의심 반 휴대폰에 증권 계좌 앱을 깔았는데 이번엔 또 그게 문제였다. 접속 기록은 뜨는데 휴대폰에서 앱이 튕겨나가 열리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몇 번을 시도했지만 똑같은 결과에 부글부글 속이 끓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나와 같은 경우를 발견하긴 했지만 증권 회사의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고 연결한들 또 못 알아들을 듯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 간신히 노트북에 증권 엡을 깔았다.

실시간으로 보진 못하지만 노트북에서 펼쳐지는 나의 은밀하고 엉뚱한 주식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와 통화를 했고, 남편을 귀찮게 굴었다. 그래서 처음 산 계좌는 'H', 'S'였다.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했더니 다들 재미있다는 눈치였다. 'H'는 44, 500원에 'S'는 1,600원 대였으니 선생님들은 그런 가격의 주식도 있나 하는 모양새였다. 선생님들과는 아주 딴 세상의 주식을 하고 있는 거였으니 이상할 만도 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나는 그렇게 출자금 백만 원을 가지고 과감히(?) 주식의 문을 두드렸다.


 막상 계좌를 열고 보니 마치 메트리스 영화 속 세상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별개의 새로움이었다. 파랗게 빨갛게 오르내리면서 계속해서 바뀌는 숫자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툭하면 핸드폰을 열어 검색(결국 앱은 못 깔았다)으로 주식 가격을 확인했고 뭔가 변동이 있으면 노트북을 열었다. 십만 원이 넘는 주를 2주 사면서도 맞게 사는 건가? 잘 못 눌러서 돈만 날아가면 어떡하지?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나에겐 너무 큰돈 아닌가? 그래도 내 친구 K가 추천해 준 것이니 그래, 믿어보자며 141,000원에 'C'를 사고, 'D' 주를 1,100원씩 30주를 샀다. 이런 것들이 '동전주'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무기를 단단히 장착하고 '기다려야 한다, 성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인들의 걱정을 들으며 포부 당당하게(?) 발을 들였다.


 처음 개장하자마자 친구가 잘 찍어준 덕분인지 'C'나 'S'이나 'D'는 다행히 내가 산 가격보다 조금씩 높아졌다. 하루에 20원이 오르기도 하고, 한꺼번에 몇 백원이 올라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H'였다. 오를 듯 오를 듯하다가 몇 계단씩 떨어지고, 한숨 쉬고 있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올라가는 'H'는 내 주식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에 애가 탔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어떡해, 오늘도 떨어졌어'라고 징징대면 남편은 기다리라고 오 만원은 될 터이니 조금 기다리라고 얼르다가 내가 계속 울상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나중엔 귀찮아하는 듯했다. 'H' 이 녀석은 관심받고 싶어서 청개구리 짓 하는 아들처럼 오늘은 올라가나 하면 뒷날은 떨어져서 속상하게 하고, 또 그다음 날은 어제 올라간 것보다 더 많이 떨어져서 속을 쓰리게 했다. 다행히 착한 'C'와 'S'와 'D'가 올라줘서 전체적인 금액은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그걸로 야속함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나의 속 탐을 알았는지 'H'가 나 잡아봐라 하며 쑥쑥 오전 오후가 다르게 커가는 것이 아닌가. 이틀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첫 매도의 버튼을 눌렀다. 오 만원을 목표로 했지만 또 누군가가 자신의 목표보다 조금 낮게 잡아야 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4만 9천 원에 매도를 한 것이었다. 매도를 누르자마자 전광석화처럼 매도 확인 문자가 왔다. 꿈인가 생신가 했다. 조금 얼떨떨하고 이렇게 쉽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만에 오 만원을 벌었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젠 마음 편하게 이별을 하고 그냥 쿨하게 나의 관심 계좌에 있던 떠나간 'H'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고마웠다. 잘 가거라. 그런데, 착하다 하며 계좌를 본 그 순간, 난 내 눈을 비볐다. 아니, 'H' 그 녀석이 나를 약 올리듯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제야 은혜를 갚을게요'가 아니라 '너 속았지? 난 더 오를 준비가 이제야 된 거거든'하더니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가 다르게 위로 위로 쭉쭉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5만 6천 원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벌었는데 잃은 것 같은, 이겼는데 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남편은 샘통이다는 듯 '내가 오 만원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하며 얄밉게 돌아섰다. 그리고 조금 안 돼보였는지 그래도 손해는 아니라며 다독였다. 그것이 주식 시장에서의 나의 첫 번째 달콤 씁쓸한 대결이었다.

 두 번째는 'S'였다. 1,600원에 샀던 'S'는 그냥 놔뒀더니 혼자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이젠 언제 팔까를 고민하면 됐다. 계속 오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착한 주 'S'는 1900원 대에서 며칠을 왔다 갔다 했다. 남편도 '난 오늘 팔 거야' 하며 출근했다. 그래? 그럼 나도 기회를 노려 봐야지. 오전 내내 S'는 1,900원에서 1,920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난 오늘도 매도는 안 되겠다라며 안 팔리면 말고라는 심정으로 2,000원에 매도를 예약하고 다른 일을 했다. 수업도 하고 수업도 받고 책도 읽고 하는데 문자가 왔다. 무슨 문자지? 앗차차, 매도 학인이었다. 정말? 정말 2,000원에 팔렸단 말이야? 사실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깍'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길 동동 기다렸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자마자 남편에게 2,000원에 팔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1,900원에 팔았다는 거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난 그렇게 주식 선무당이 되었다.

 세 번째는 조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H'와 마음 아프게 이별하고 'S'를 기쁘게 보내고 나니 현금이 생겼다. 이것으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친구 K가 권해준 주식을 사기로 했다. K는 '그래, 너 용돈이나 벌어라'하는 생각인지 자기가 투자했다가 많이 하락한 주식, 이제 오를 일만 남은 주식을 추천했다. 그래서 갖게 된 게 반도체 주식이었다. 한 주당 2,090 하는 거였는데 마침 남편이 전화가 왔길래 이런 주식을 사기로 했다며 몇 주 사면되냐고 물었다. 예수금이 얼마냐길래 사십만 원 정도 있는 거 같다고 하니까 한 천 주 정도 사면 되지 않을까라고 해서 당당히 천 주 매수 예약을 했다. 또 순식간에 매수가 됐다. 와, 내가 이젠 천 주를 가진 주식 부자가 되다니. 그때만 해도 곳간에 쌀을 가득 채워둬서 느긋한 마음이었다. 그냥 싼 값에 새로운 주식이를 데려 온 것이 기뻤다. 근데 뭔가 싸 하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봐도 2,090원 하는 주를 천 주면 이백 아닌가? 설마, 돈도 없는데 어떻게 거래가 이뤄질까? 내 돈이 있었겠지 하며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퇴근을 한 남편이 내 계좌를 확인하고 예수금을 보더니 '이런'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면서 금일 반대매매대상 현황이니 어쩌니 하며 알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했다. 무슨 일이 터진 건지도 모른 체 '아이고아이고' 하는 남편 옆에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얼굴로 수습되기만을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금이 없는 나에게 증권회사가 대출을 해 준 모양이었다. 나는 도리어 화를 냈다. 내가 꿔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걔는 대출을 해 주는데? 하지만 따져봤자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억울했지만 일단 계산 잘못한 나의 잘못이고, 또 밖에서 계산 잘못한 남편 탓이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날 우리는 주식 계좌로 이백 만원을 더 넣어야 했다. 그래서 내 주식 생활은 백만 원에서 갑자기 삼백 만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설상가상 내가 산 그 문제의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숫자만 들여다봤다. '너, 어쩌면 그럴 수 있니? 너는 나의 천 주라고! 그러면 안 돼!' 삼일 연속 내려가던 주식은 나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오늘 그래도 빨간 불을 보이며 2,13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반은 팔아야 맘이 놓일 것 같다. 가끔 친구 K는 카톡으로 '손가락 근질근질하다고 팔지 말고 워워' '조금 더 기다려'라든가, '일희일비하지 말고, 주식은 오래 가지고 있는 거야'라든가, '난 일 년 넘게 가지고 있는 주식이 있는데 일주일도 못 기다리냐'고 '가만히 있어'라며 내 손가락을 지휘한다.

 그리고 마지막, 내 한 달 조금 넘은 주식 생활 중 큰 이벤트는 'P'였다. 철강 주라며 K가 권해준 거였는데 떨어지는 가격을 주워서 샀더니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P'를 산 다음 날, 갑자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오늘 P가 일낼 거 같은데?'라는 거다.

 "상친다는 게 뭐야?"

 "아이고, 그런 게 있어. 너 공부 좀 해 공부!"

라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빨간색 숫자가 조금 있으면 오르고 다시 오르고 계속 계속 오르고 있는 거다.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내 마음도 콩닥콩닥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숫자가 멈추고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정말 상!쳤!다!

 심마니가 깊은 산에서 삼을 캐서 '심봤다'를 외치는 것처럼 나도 '상쳤다' 그렇게 상을 쳤지만 내가 가진 주가 10주밖에 안 되니 큰 수익을 본 것은 아니지만 난 그날 신인 타자가 투수 무서운 줄 모르고 그냥 휘두른 베트에 홈런을 날린 거고, 바람의 도움을 받아 홀인원을 한 거고, 자리에 있다가 남이 주는 공으로 골인을 한 거였다. 그리고 분수도 모르고 연속 상을 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혹시나 몰라서 다음 날엔 상칠 가격에 매도 예약을 미리 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갑자기 상에서 떨어지기 시작해서 조금 내린 가격이지만 크게 오른 가격으로 일단 기쁘게 매도했다.  


 지금까진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승자가 됐다. 내 실력이 아니라 친구와 남편의 도움이고, 떨어진 주식 이삭 줍기를 하고 있다. 이제 슬슬 매도니 매수니를 알아가고, 앱에서 일봉, 주봉 등등 '봉'을 배워가고 있다. 은근 긴장감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기쁨도 있다. 다들 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며 말리는 사람도 많지만 모두들 하는 '주식' 나도 좀 알고 싶다. 이렇게 주식 앱을 드나들다 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회사들이 있고,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퍼즐 조각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회사의 발가락만도 안 한 주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회사를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어떤 이는 사행성이라고도 혀를 차는 사람도 있고, 그깟 돈 갖고 무슨 주식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은 잔잔했던 일상에 작은 이벤트가 되어 주고 있다.

 이렇게 나의 은밀한 주식 생활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주식으로 내가 돈을 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있다. 나중엔 내 이익금으로만 주식을 하는 것.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다 보니 우리나라 회사에 스리슬쩍 애정을 가지게 되고, 뉴스에서 삼~만 해도, 포~만해도 귀가 쫑긋 거린다. 거액의 투자자들이나 증권 회사에선 비웃을지도 모르는 나의 주식 생활이지만 틈새시장을 노리듯 나는 동전주 위주로 저렴한 주식으로 큰 기쁨을 찾을 것이다.  

주식, 너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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