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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Sep 20. 2021

'금수강산'과 '산강수금'

-엄마의 2차 치매 검사 동행기-

 동생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움찔움찔한다. 오누이 사이가 돈독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혹은 늦은 밤 울리는 동생의 전화 소리엔 뭔가 불길함이 따라붙는다. 새벽 한 시에 울린 전화 벨소리는 엄마의 뇌출혈을 알리는 거였고, 낮게 깔린 녀석의 목소리엔 아빠의 건강 상태와 힘듦이 묻어 있다. 그래서 전화 액정에 동생 이름이 뜨면 '혹시 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둘 다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그냥 하는 안부 전화임에도, 가끔 누나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혹은 속내를 터놓고 싶어 전화를 했을 텐데 그 전화를 받는 난 혹시 내가 다하지 못한 의무감과 책임감에 제 발 저린 딸이 되어 전화를 받는다. 그래도 동생의 페이스북에서 소소히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은 알고 있는 터여서 요즘은 별일 없구나, 참 부지런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있는데 오늘 동생의 문자에선 어딘가 조금은 불안하고 어딘가 별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듯한 냄새가 났다.

 보건소에 가서 엄마가 치매 검사를 해야 한다는 문자. 보건소 방문 날짜와 시간이 적힌 문자. 그리고 동생의 목소리.

"내가 알아봤는데, 보통은 치매로 진단되지는 않는대. 근데 보호자가 동행했으면 하네. 누나 시간 있으면 갈 수 있어?"

그렇지 않아도 동생의 페이스북에서 엄마의 치매 검사 에피소드를 읽고 한참 웃었는데, 그게 이렇게 2차 검사라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보건소를 동행하는 엄마와 아들. 중얼중얼 거리며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된 엄마는 '금수강산'을 거꾸로 외우고 가셨는데 그날 나온 문제가 하필이면 '삼천리강산'이어서 제대로 대답 못 했다며 억울했다는 이야기. 일상의 웃고 지나치는 이야기로 넘겼는데 엄마는 치매 2차 검사를 받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확산된 코로나 때문에 보건소 주변이 너무 복잡해서 남편이 동행해서 운전을 도와주기로 했다. 차에 타자마자 엄마는 그동안 딸을 만나지 않아서 못 했던 심경을 미주알고주알 꺼내 놓셨다.

검사 점수가 낮다는 이야기부터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 2차 검사를 받고 또 큰 병원에 가야 할까 봐 잠이 안 왔다는 이야기, 제대로 검사가 되지 않아서 억울했다는 이야기. 급기야 엄마는

  "너도 한 번 해 봐, 삼천리강산 거꾸로"하시는 거다. 잠깐 당황했지만 눈치가 없는 딸은 나도 잘 못하겠다 했어야 했는데. 그만 '뭐, 산강리천삼?'하고 말았다.

 "아, 너는 되는구나이." 흐려지는 말끝을 들으며 싸한 생각이 들었다. 에구 이 멍청이!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우 같은 딸이 되었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 기분 생각 안 하는 건 정말 내가 아빠를 닮았나 보다. 고지식하기가.


보건소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젊은 남자 선생님이 엄마에게 목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엄마는 내 팔을 잡아끌며 '저 선생님이야, 저 선생님하고 했던 거 같아'하며 계속 눈으로 선생님의 뒤를 쫓았다. 선생님은 무안하셨는지 어설픈 웃음을 보이시며 인사를 했는데 나도 웃으며 억울하셔서 못 주무셨다고 어떻게 된 거냐는 무언의 원망을 섞어 말씀드렸다. 웃고는 있었으나 나도 엄마도 불안함의 굴레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교수와 상담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검사지가 교수에게 전해졌고 교수는 당신이 분석한 내용을 설명하셨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시공간을 구분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으셔서 점수가 많이 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검사지를 보여주셨는데 이상했다. 다른 것들은 다 잘하셨는데 도형 그리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검사의 순서가 첫 장엔 원을 그리고 두 번째 장엔 삼각형을 그리고 세 번째 장엔 정육면체를 그리는 거였는데 원과 삼각형은 제대로 그린 것 같은데 정육면체는 보고 그렸는데도 그 모양이 이상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교수는 기억력에는 별 문제가 없어서 당연히 치매는 아니지만 중학교 학력이라면 정육면체쯤은 많이 그려봤을 텐데 못 그린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는 거라고 설명을 했다. 치매가 아니라는 그 말에 안심을 하셨는지 엄마는 사실 당신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초점이 맞지 않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교수는 인지 작용을 하는 가장 기본이 감각기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다독이는 듯했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이 조금 펴지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냥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얘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가고, 과수원엘 가고, 집안일을 하는 것까지 몽땅 쏟아 내셨다. 엄마의 말을 듣는 중간중간에 고맙게도 교수는 그에 맞는 질문도 하고 추임새도 넣어가며 엄마의 말과 행동을 확인하는 듯했다. 마치 엄마는 길 잃은 강아지가 주인을 만나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 세상 단 한 사람이라는 듯 교수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불안했던 마음을 안도로 풀어내며 한참을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검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한 톤이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라는 직원들의 권유에 다신 안 온다 선언을 하셨다. 보건소에서는 책과 다양한 물품들을 챙겨서 엄마 편에 보내셨다. 공부하고 오시라고 웃으며 배웅하는 남자 선생님에게 자신의 점수에 대한 원망을 끝까지 놓지 않으신 엄마. 그래도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뿐했다.  도착하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아빠께 치매가 아니라고 큰소리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웠다. 아빠도 많이 긴장하고 계셨다가 안심을 하셨는지 오래간만에 보는 환한 미소가 잊히질 않는다.

 두 분은 곧장 문제지를 펼치셨다. 그리고 엄만 아빠에게 자신이 틀린 문제를 펴 놓고 그려보라 연필을 내밀었다. 갸우뚱 대시는 두 분의 모습에 묘한 씁쓸함과 안도가 뒤섞여 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럴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또 아무것이 될 수도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면 좋다고 달랬지만 지금은 막무가내시다. 아마도 일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받는 것을 싫어하는 내 맘과 같을 것이다. 혹여 이것이 치매로 이어지면 어쩌나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확인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며칠을 안절부절못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뭔가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시간의 흐름을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다 된 것 같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나이 들고 있음을 실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님 덕분에 주중 스케줄과 주말 스케줄이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나누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이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이기에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사람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 만큼은 우리 가족만큼은 무탈하고 끝까지 건강했으면 하는 이기심을 가져본다. 이 삼십 년 후의 나의 모습일 수 있고,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새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이렇게 이별해야 할 때가 됐구나 느끼며 순리대로 그렇게 잔잔히 흘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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