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모양이다. 어제부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더니 을씨년스럽다 못해 매서운 강풍이 아파트 주위를 맴돈다. 교회나 성당을 가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는 왠지 사람을 들뜨게 하고 만나는 사람 모두를 사랑할 것만 같고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선물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나의 크리스마스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나 혼자 며느리였을 땐 그저 시어머니의 김장을 그때그때 얻어먹기만 해서 김장과 나는 별 상관이 없는 그런 일이었다. 하긴 제주에서 김장이란 연중행사이긴 하지만 내 주변에선 그리 크게 하지 않는다. 김칫독을 땅에 묻는 법도 별로 없고, 200포기, 300포기 하는 집도 사실 드물다. 그러던 것이 동서들이 생기면서 크리스마스날 김치를 만드는 것은 우리 집 연례행사가 되었다. 네 집이 나눠먹을 거니 넉넉히 해야 하겠지만 각 집마다 갓 담은 김치를 선호하는 남편들 때문에 김장이라고 해야 스무 포기 남짓이다. 일 년에 몇 번은 아직도 어머님이 조금씩 새로 담가서 각 집에 나눠주신다. 그래서 우리 집 김장은 그냥 식구들이 얼굴 보는 상징적인 그런 시간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김장날이 된 것은 세 집이 모두 모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날짜를 정하다 보면 몇 번의 전화와 시간 조절로 진이 빠지기 일쑤다. 오늘은 막내가 안 되고 내일은 내가 안 되고 가족들이 모두 모였으면 하다 보면 날짜 잡는 건만 한참이 걸리다 보니 언제부턴간 시어머니의 배려(?)로 성탄절인 크리스마스 날 우리 집은 김치를 담그는 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빨간 옷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선물 대신 수육을 만들어 갓 담근 김치에 점심 한 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치는 크리스마스에 담그기로 했다. 막내 동서는 성탄절에 친정 오빠가 지은 세컨드 하우스에서 파티하기로 했다고 해서 새해에 할까 미루다가 어찌어찌 결국 시어머니 바람대로 또 성탄절에 만나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 사니 한 차로 시댁을 가는데 조카들 얼굴이 좋지 않다. 은근슬쩍 얘기하다 보니 친구들과 약속을 한 모양인데 눈 예보도 있고, 김장도 해야 하고 코로나가 아직이라는 이러저러 이유로 나가지 못해 뾰로통한 눈치다. 선물도 막내 동생만 받았다고 투덜대기에 큰엄마인 내가 나서서 용돈을 슬쩍 얹어주며 크리스마스 날 김장은 우리 집 문화라고 생각하라 세뇌시켰다. 우리 집은 성탄절이 김치하는 날이라고. 할머니께서 김치를 만드는 한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만약 바뀌게 된다면 너희 엄마가 김치를 할 때라고. 웃으며 하는 내 얘기를 듣고 동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땐 사 먹게 될 거라면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 남편은 고생한다 커피 심부름을 하고, 둘째는 수육을 담당하고, 조카는 배추를 나르고 동서와 나는 완성된 양념을 배추에 예쁘게 색칠하기 시작했다. 양념이 넉넉하니 맛있다느니 굴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김치 대야 가득 지진 났을 때의 경험담이 우르르 쏟아지고, 사돈들 건강을 챙기시는 어머니와 코로나 이야기로 금세 뚝딱 김치는 완성되었고, 어제 얻어 왔다면 절였던 파를 내놓는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또 얼렁뚱땅 파김치도 먹음직스럽게 버무려졌다.
문제는 점심 식사 자리였다. 굴 두 접시와 김치 세 접시 그리고 수육을 주위로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이제는 간도 잘 모르겠고, 맛이 어쩐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거다. 그 속사정을 얘기했더니 주위 어르신들이 며느리 부르라고 했다면서 은근슬쩍 어머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덧붙이셨다. 어머님은 우리 며느리들 바쁘다고 했고 그 어른들은 다른 며느리들도 다 바쁜데도 온다고. 그러니 김치 절이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훈수를 두셨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배추 절일 땐 평일에 휴가를 받은 남편이 갔었는데 이미 배추가 다 절여져 있어서 그냥 왔던 터라 왠지 그 이야기가 좀 억울했다. 그래서 앞으로 배추 절이는 것은 아들들이 맡으면 어쩌겠냐고 내뱉고 말았다. 소금물을 만들어서 배추를 담그고 헹구는 일은 그래도 힘이 필요하니 그것은 아들들이 맡고, 양념은 며느리들이 배우면 될 거란 계산에서였다. 어머님이 당황스러워한다고 느낀 것은 내 기분 탓일까?
얼렁뚱땅 웃음으로 버무려서 서먹할뻔했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가족 모임이나 행사를 할 땐 좀 나누어서 하고 함께 돕고 서로 으쌰 으쌰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오롯이 며느리 몫이라 여기고 진을 다 빼면서 집안일을 했을 터인데 그것 하나 이해하지 못한 속 좁은 내가 좀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어머니와 난 이런 면에선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예감이다. 아들을 감싸시려는 어머니와 남편을 부려 먹으려는(?) 나와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다 보니 레빈이 키티와 결혼을 하고 느낀 신혼의 경험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한참 웃었는데 결혼 생활이란 20년이 지나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타협해야 할 것도 많고, 모른 척 배짱 튕겨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에 했던 김치는 정말 맛있고 시원했다. 별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공기 뚝딱하게 만드는 김치를 보며 두고두고 곱씹게 될 것 같다. 내년엔 꼭 아들들이 절인 배추엔 어머니의 진두 지휘 아래 맛난 양념을 전수받은 며느리들의 협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