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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23. 2021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다시 시작한 한국어 수업-

다시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지만 부담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근 일 년을 쉬고 나서 다시 학생들과 만나는 일이라 많이 긴장되고 조바심이 생겼다. 더구나 나는 한국어 강사로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다시 공부하면서 가르쳐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서게 된 강단이었지만 이래 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는 첫날, 그래도 다행히 성실하고 예의 바른 학생들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학교의 진행 과정도 알아야 하고 학생들과도 친해져야 하고 한국어 책도 다시 봐야 했지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이 주가 지나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난 꽤 편안해졌다. 

낯선 얼굴들과 어려운 이름들을 대하며 그들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한국어를 함께 하며 질문하고 대답하고 새로운 생각을 들어보고,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을 고쳐주며 학생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 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이를 쳐다보고,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잘못 부르고. 그래도 그들은 젖은 솜이 되어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빨아들였다. 

 오늘 쉬는 시간에 한 중국 여학생이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걱정이 한 움큼 날아가고, 긴장이 슬며시 사라졌다. 오늘에야 이 학생들이 내 아이들 같고, 우리 학교 같고, 내가 출근해야 할 직장 같다. 두 명의 담임이 있으나 한 분은 계속 맡아오던 분이라 나와는 다소 서먹했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토픽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개인 톡도 날아들었다. 


'아!'

그래서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이래서 나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곳에 있어야 하나 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투정 부리고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숨을 쉬어야 하나 보다. 내가 살아가는데 행복을 주는 것은 이 얼굴들이고, 이곳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그 물이 버겁고 피하고 싶고 멀리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마지막에 돌아오는 곳은 역시 이곳이 아닌가 싶다. 물을 떠나봐야 그 물의 소중함을 알고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첨벙 댈 수 있는 이곳이 그래서 편안하고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수업은 안 하고 있으면 아쉽고 불안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면 쉬고 싶고 안 하고 싶은 애증의 뫼비우스 띠다. 좋음과 싫음의 경계가 없고, 출구와 입구가 따로 없는. 


 내가 놀고 있는 두 개의 물은 책과 함께 헤엄치는 넓은 물과 한국어를 샘솟게 하는 작은 물이다.  오랜 시간을 했으니 넓고 크다고 하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좁은 곳이라 하지만 내가 느끼는 마음의 크기와 깊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느 물에서 나를 만나건 그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고 내가 만든 물속에서 이래 저래 헤엄치고 자맥질하고 마음껏 숨을 쉬는 그런 모습을 오래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오늘 학생들에게 나를 칭찬하지 않으면 교실 문을 나갈 수 없다고 협박(?)했더니, 예뻐졌다, 날씬해졌다고 능글능글거린다. 불합격이라고 했더니 한 여학생이 "젊어 보여요"했다. 옳거니, 쉰이 넘으니 어려 보인다, 젋어보인다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며 수업을 끝냈다. 인사를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정말 무지막지하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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