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휴대폰 화면에 '남..........편'이 떴다. 오래간만에 낮에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니 맥주 한 잔도 곁들이게 되었는데,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푸느라 점심이 길어졌다. 문제는 그곳이 제주시 외각인 데다 퇴근 시간이 시작돼서 시간대가 애매했다는 점이다. 대리 운전을 불렀는데도 배차가 되지 않았다. 날은 컴컴해지고 겨울밤이라 바람이 싸했다. 결국 둘은 각각 남편을 부르기로 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은 남편뿐이었다. 과연 남편이 군소리 없이 우리를 데리러 와줄까? 짜증 내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집은 가야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후배가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고 버튼을 누른 순간, 환하게 빛나는 화면 가운데 '남........편'이란 글씨가 떴다.
"이게 뭐야?"
후배는 깔깔거리며 '남'과 '편' 사이에 20개 마침표 정도는 들어가 있다며 추운 몸을 더 웅크렸다. '남'과 '편'. 그 사이에 멀찍이 있는 말줄임표 속엔 아마도 후배의 이십 년 넘은 결혼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이 많지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을 거고, 말해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포기 반 체념 반 했던 그 시간들이 '남.......편' 속에 가득 담겨 있었으리라.
'남편'. 남이 만나서 내 편이 되어줄 거란 기대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어디 내 편만 되었을까? 가끔은 남보다 더 못한 냉정함에 서운하고, 얄미워서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도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 유행가 가사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고 보니 남이 되어 에 울고 웃는다 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내 남편이 '남'처럼 느껴진 서운한 순간이 많았다. 강사 활동을 하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누군가의 험담이라도 할 것 같으면 항상 잘못은 나한테 있고, 똑바로 처신을 해야 한다는 둥, 축구 경기장 얄미운 심판처럼 굴 때. 몇 번 다짐을 받고 약속을 해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올 때, 싱크대 손잡이가 떨어져서 고쳐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이따가 이따가'를 연발하는 우리 남편. 약속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깨라고 있는 것인지, 이젠 나도 적응할만한데도 잘 되지 않는다. 요즘은 나보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서운함도 많이 든다. 역시 '남편'은 '남'인가?
하지만 이 세상에 오롯이 내 '편'도 역시 남편이다. 학교를 잠깐 쉬어야 했을 때 '우리 부인 어디 가서 기죽지 말아'라며 은근 내 눈치를 살피거나, 직장 동료가 내 수필집이 너무 재미있었다며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한다고 은근 자랑할 때, 자기 잘못을 알고 '씨익' 웃을 때는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내 편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남'과 '편'을 왔다 갔다 하는 우리 부부 사이엔 몇 개의 말줄임표가 있을까?
드디어, 코로나를 대면했다. 남편이 몸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더니, 양성이었고 나도 열이 좀 나는 거 같아 검사를 받았더니 양성이어서 결혼 이십 년 만에 둘이서 일주일 동안 집 안에 콕 박혀있었다. 좋게 생각하면 같이 걸렸으니 마스크 없이 편하게 지냈지만 사나흘을 끙끙 앓는 남편과 수액을 맞아서 그랬는지 비교적 큰 일없이 지낸 나는 남편의 수발(?)과 심부름과 집안일을 계속했다. 말로는 자신이 먼저 시작했으니 먼저 괜찮아지면 내 수발을 들겠다고 하더니 웬걸! 이불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 남편. 엄살도 있는 거 같은데 아프다며 몸을 움츠리는 내 남편. 며칠을 집에 있어 보니 은퇴해서도 잘 적응할 수 있겠다며 철딱서니 없는 말을 하는 내 남편. 퇴근을 하고 나서 아무래도 코로나 후유증 같다며 너무 피곤하다고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눕는다.
'아이고, 이 웬수야'
나에게 남편은 '남' 80%, '편' 20% 임에 틀림없다. 20%를 믿고 사는 내가 비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