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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Oct 12. 2021

젓가락 안 사왔어요

-동서와 올케, 그리고 나-

추석, 시댁에 가는 길이었다.

"아참, 형님 젓가락 안 사 왔어요."

운전을 하다 불쑥 내뱉는 동서 말에 혹시 어머님 집 젓가락이 맘에 안 들었나 싶어

"어머님이 어제 전부 끓이고 소독했어"라고 대답했다.

'다행이다'라던가  '알았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리 동서는

"아니~, 매번 상 차릴 때 우리 아이들이 젓가락 숟가락 놓 때, 짝이 맞지 않아서 고민해서요."

눈앞이 반짝했다. 상 차리기 도우미를 하라고 하는 건 매번 큰엄마인 나의 몫이었고, 심부름도 내가 제일 많이 시키는데, 동서가 그걸 보며  속상했겠구나 생각하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별 내색이 없어서 당연히 그쯤 해도 되는 거라고 어림잡아 혼자 판단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어린 줄만 알았던 막내동서도 엄마였다. '엄마'라는 단어엔 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있는 거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지 않으니, 내 아들이, 내 딸이 심부름하면서 잔소리를 듣거나 잘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많이 속상했나 보다. 동서가 귀여웠다. 자기가 시킬지언정 다른 어른들 심부름에 쩔쩔매는 자식들의 모습이 명절 때마다 맘에 걸렸던 모양이다. 하긴 차례가 끝나고 삼촌들에게 설거지를 강요했더니 다음 해부턴 우리 어머님이 나서서 설거지시키셨다. 형수가 시키는 건 못 보겠는가 보다.  


 나에겐 여동생 같은 막내 동서, 언니 같은 올케가 있다. 모두 다 나보다 어리지만 제 몫을 야무지게 하는 동서와 올케다. 요리라고는 전혀 해 보지 않은 내 음식이 맛있다고 주말이면 임신한 몸 이끌고 우리 집을 찾았었던 막내. 막내는 친정에서도 막내라 그런지 붙임성도 있고 함께 어울리는 것도 잘했다. 동생은 가끔 누나의 음식을 맛있게 먹은 동서의 얘기가 영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육수도 내지 않고 찌개를 끓이는 누나의 음식 솜씨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음식은 고등어 조림 정도였는데 맛있다고 먹는 그 모습이 대견해서 주말이면 신나게 음식을 준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막내네는 우리가 사는 빌라로 이사를 왔다. 대출을 받고 비싼 아파트로 갈까, 대출받지 않고 집을 살까 내 의견을 물었었는데, 경제관념도 없으면서 빚이 있으면 좀 답답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대답에 동서는 별 망설임 없이 옆 라인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가볼까 했던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서 약간 후회하는 빛이 보인다. 형님도 잘 아는 게 아니었군요 하는 눈빛으로) 그렇게 칠 년을 함께 살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집을 들락거렸고, 아이들도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특히 그 집 막내 은서는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꼼지락 대는 것이 너무 귀여워 옆에서 지켜보느라 오후 출근도 미루고 매일매일 눈동장을 찍었다. 은서가 옹알이를 하고 은서가 기어 다니고, 은서가 걷고, 은서가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크엄마'라는 것을 기쁨으로 들으며 함께 했다. 가끔 쉬어야 하는데 '큰엄마, 가도 돼요?', "큰엄마 어디예요?"라는 조카들이 귀찮기도 했지만 엄마만큼 가깝게 지내다 보니 나도 그냥 내 식구거니 내 딸이거니 아들이거니 했다. 그래서 우리 집 물건 중엔 저 소파는 은서가 애기 때 앉았던 곳인데, 현서가 목욕했던 곳인데, 현규가 매일 두드리는 테스크 탑인데 하는 추억들이 담뿍 담겨있다. 이러다 보니 내 입에선 친정엘 가서도 '은서가, 현서가, 현규가'하는 얘기가 나오고 남동생은 '누가 더 예뻐? 은서가 예뻐, 아준이가 예뻐?' 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우리 올케는 말이 없다. 없어도 너무너무 없다. 낯가림도 심하고 조용한 편이어서 조금 겉도는 편이다. 하지만 나와 동생과는 잘 지낸다. 다만 말 많은 딸과 아들을 둔 부모님의 입장에선 말 없는 사위와 올케가 잘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올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니 운동도 혼자 하고, 해금도 혼자 배우러 가고, 솜씨가 좋아 뜨개질, 손바느질, 전통 매듭짓기를 배우러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소란스러운 공치사 없이 우리 집 구석구석엔 올케가 준 물건들이 많다. 부자가 된다는 부엉이, 예쁜 초 세트, 돌로 된 작은 석상, 에스프레소 커피 잔, 부채 등등 생일마다 명절마다 생각지 못한 선물로 나를 즐겁게 했다. 특히 직접 만든 가방이나 팔찌는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힘들 것들이었다. 한동안은 명절 때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다가 세트를 만들어 선물을 했고, 요번 추석엔 통밀로 된 카스텔라를 직접 만들어 손에 안겼다. 나 같으면 하지 않을 과수원 일도 동생과 힘들다 하지 않고 잘하는 눈치다. 그러다가 가끔 따끔따끔 찔리는 말도 한다. 언니네 나이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을 찾는데 왜 언니는 그러지 않냐고. 조카가 나를 닮아 냉정하고 자기만 생각한다고.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바쁜 동생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상투적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자 셋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 '가족'이라는 틀에서 서로를 바라보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듣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리고, 다르게 해석되는 까닭이다. 어쩌다 보니 동서가 되고 올케가 되었으니 나를 볼 때 동서는 함께 숙제를 해야 하는 동지로서 다가올 것이고, 올케에게 나는  '시'댁 식구로서 의무감을 강요하는 그런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평생 숙제를 '여자'라는 같은 공통점에서 해답을 찾는다면 또 그리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시댁 문제', '남편 문제','집 문제' 모두 처한 입장이 다르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 셋 모두 똑같이 해결해야 할 미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쁘다고 친정에 코빼기도 보여 주지 않는 시누이가 얄궂고, 직접 음식을 하거나 동서네 식구들을 잘 아우르지 못하는 형님이 야속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별 탈없이 큰 불만없이 버무려지고 섞어서 사는 걸 보면 셋 다 그 궁합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닌듯 하다. 아마도 그건 알다가도 모르고, 몰랐다가도 알게 되는 시간이 부여하는 자연스런 해결책이 아닐까?

  여전히 동서와 나, 올케와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지낸다.  섭섭하면 섭섭한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화나면 하나는 대로 말이다. 더구나 함께 나이들어 가는 입장이고 보니 다 부질없다 느껴진다. 그래서 쓸데없는 감정의 침전물을 남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지내는 것이 '가족'에 대한 예의이자 현명한 판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응원한다. 가족이라는 교집합으로 묶여 있는 여자 셋의 잔잔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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