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는 알고 있을까?

-추억거리 물건들의 일방적 시점 1-

by 가시나물

"엄마, 정신 놓치면 안 돼! 정신을 똑바로 해야지!"

해서는 안 될 말이었지만 뇌출혈로 입원했던 엄마의 기억이 자꾸 앞뒤가 맞지 않고 왜곡이 되자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냉정하게 내지른 소리였다. 독이었다. 더 이상의 불편함을 용인할 수 없다고, 몇 번씩 다시 말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일을 하기 싫다 쏟아부은 모진 말이었다. 말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엄마가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아직이었는데 그 며칠도 참지 못하고 내 속을 엄마한테 다 내보인 속없는 딸.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딸의 표정을 보기만 해도 당신이 하는 말이 뭔가 이상타 느끼고 있었을 엄마한테 그렇지 않아도 내심 불안해하고 있을 엄마를 향해 당신은 아프다, 당신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냉정하게 확인시킨 셈이었다. 엄마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곤 "내가 다 잊어도 우리 딸을 잊으면 안 되지" 라며 얼버무리는 엄마.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뭔가 쿵하고 내 마음속에 가차 없이 떨어지는 건 후회와 미안함이었지만 내뱉어진 말을 다시 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조금만 더 참을걸. 아무 말 없이 환자 침대에 몸을 누위는 엄마의 모습이 쓸쓸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 바깥출입을 마음 놓고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만 예전의 모습으로 많이 돌아오셨다. 다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얘기하지만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또 올 수 있다는 말에 엄마의 마음은 지금 살얼음판이다. 가끔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하다고 하는 엄마를 며칠 만에 보고 올 때면 몇 년을 한꺼번에 뛰어넘어버린 것 같은 모습에 또 한 번 쿵하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난 어느 날 엄마는 옷장 속 겨울 외투 주머니에 몰래 감춰둔(?) 팔찌 하나를 꺼내 오셨다. 동네 계 모임을 하면서 같이들 마련한 거란다. 일곱 돈 정도가 되는 거라며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 하나쯤 만들어 끼라며 건네셨다. 며느리한테 주지 못 해 미안하긴 한데 이건 우리 딸에게 당신이 주고 싶은 거라고. 또 당신이 쓰러지거나 아프면 어디 있을지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주는 거란다.

'꽃밭계'(아마 거리에 있는 꽃밭 조성하는 일)를 하면서 한 번은 딸내미 옷도 사줘야 하고 아들 내미 먹을 것도 사줘야 하고, 반찬거리에 경조사비에 그 돈 쪼개고 쪼개 쓰면서 그 쪼갠 돈들을 다시 모아 몇 년 만에 금팔찌 하나 샀을 터였다. 그래 놓고도 엄마 손목에서 그 팔찌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팔찌를 끼고 멋을 낼 만큼 시간이 많거나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모셔놓기 용으로 상전 아닌 상전이 된 엄마의 팔찌.

번듯한 케이스 안에 넣어진 것도 아니고, 주머니 안에 얼마 동안이나 있었는지 모를 검으스름한 색이 비치는 누런빛 투박한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도 세련되지 않고, 그냥 금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평범한 팔찌였는데 엄마와 몇 번 실랑이 끝에 결국 내 손에 쥐어졌다. 엄마가 물려준 그대로 어떻게든 껴보려 했지만 이음새가 영 시원치 않았다. 꼭 불량품 같다는 생각도 들고, 끼기도 불편하고. 끼고 다니지도 않으면서 왜 그리 모셔두었는지.

살기에 바빠 목걸이, 반지, 팔찌 화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엄마는 그래서 항상 일바지 차림이었던 것 같다. 명절이어서 설날 큰집에 갈 때도 아빠는 양복인데 엄마는 일바지였고, 밭에서 농사 지을 땐 큰 패랭이 모자에 일바지였다. 그러니 팔찌가 가당키나 했을까? 다들 가지고 있는 장신구 하나쯤 가지고 싶은 여자로서의 욕망인지 비상시를 대비한 어머니로서의 준비성인지. 팔찌는 그렇게 엄마 옷 주머니 속에서 몇 년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련했으면 끼고 다니고 끼고 다니면 자랑도 좀 하고, 부러움도 좀 받고 그랬더라면 좋았을텐데, 누구 하나 엄마에게 금팔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애지중지 팔찌를 몸도 성하지 않은데 퇴원을 하자 마자 딸앞에 내놓으신 거였다. 건네주시면서 반지 두 개는 될 거니 민호랑 같이 만들어 끼란다. 말씀은 그리 하시지만 엄마의 눈길은 자꾸만 팔찌를 향햐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내 손만 부끄러웠다.

이게 뭐라고 엄마는 그렇게 애지중지였을까?

엄마의 보물 같은 팔찌는 알고 있을까? 결혼하자마자 빚 갚느라 예물이라고 하나 받은 결혼 반지까지 모두 팔아버리고 빈 손이 허전해 금부치라고 몇 년 만에 이거 하나 마련한 엄마의 설렘을. 남편도 자식도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에 힘들때 마다 한 번씩 들여다 보며 세상 다 가진 듯 뿌듯해 했을 엄마의 모습을 팔찌는알까?

팔찌는 이해할까? 당신이 이 세상 떠나고 나서도 엄마 대신 딸의 손에서 함께 하고픈, 그래서 헤어지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이제 가도 아무 걱정 없는데 자식 없이 살아야 하는 너 하나 밟힌다고 그래서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잔소리하고 확인하는 우리 엄마. 지금도 한 달에 서 너 군데 병원을 가야 한다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우리 엄마. 이런 우리 엄마에게 팔찌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팔찌는 알까? 다시 기억이 없어질까 봐, 다시 또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그 불안한 마음 감추며 딸내미에게 미리 건네는 유품 같은 물건이란 걸.

하지만 팔찌는 알까? 팔찌를 받는 딸의 마음을. 진짜 주변 정리를 하는 것은 아닌 가 불안 불안한 마음을. 이젠 옷도 필요치 않다 하시고 더 이상 뭘 사려고 하지도 않으시고 이제 가져서 뭐 하냐며 한사코 거절하는 엄마를 보는 씁쓸한 딸의 마음을. 식당 음식도 맛없다,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갖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엄마를 보는 딸의 덜컹거리는 마음을 엄마는, 그리고 엄마의 팔찌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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