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발소

-아빠의 머리카락-

by 가시나물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옷 사다 드리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해서 빨간색, 주황색의 밝은 색으로 사다 드리고 질이 중요한가 해서 매끄럽고 보드라운 느낌이 나는 것을 고르는 데도 사다 드린 옷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였다. 취향의 문제라고만 여기던 나는 다음부터는 직접 사서 입으시라 짜증 아닌 짜증을 부렸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거울을 보며 혼잣말하는 것을 듣고 말았다. 이젠 어떤 옷을 입어도 옷 태가 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비싼 옷도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모자로 감춰도 소용이 없다며 푸념을 하시는 거였다. 일류 멋쟁이는 아니셔도 공무원 퇴직을 하신 후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 관리도 잘하셔서 살도 많이 빼고, 피부과에서 점도 빼고 하루가 멀다 달걀흰자 세수를 해서 멋쟁이 할아버지란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작년 심장이 나빠져서 병원을 다녀온 후로는 그 어떤 것에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이젠 옷도 많으면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떨려 보였던 건 나 혼자의 착각이었을까. 그러니 미용실은 말해 뭘 하겠는가. 희끗희끗 저물어가는 가는 색이야 요즘 은발이 대세인 데다가 잘 살아왔다는 인생의 증거이니 오히려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듬성등성 고르지 않게 빠져버린 머리숱은 이렇게 저렇게 가려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철없는 딸의 눈엔 할아버지면 머리가 희고 머리카락의 숱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듯 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아버지는 미용실엔 가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길어서 지저분해지는 머리카락을 두고 볼 수 없어 할 수 없이 미용실에 갔다 온 날에는 돈이 아깝다며 볼멘소리를 하셨다. 얼마 자르지도 않았는데 만 원을 내기가 너무 억울하다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바리깡 하나를 들고 집엘 들어왔다. 선물을 묶던 노란 보자기와 작고 가는 빗을 함께 들고 화장실에 의자를 놓더니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갔다. 지금부터 아버지 머리는 자신이 자르겠다며 엉거주춤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자기만의 이발소를 차렸다. 다들 또 어떤 엉뚱한 일을 하려는 건가 모두 동생의 손에 들린 바리깡을 쳐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즘 스타일로 많이 세련된 하얀 바리깡이 ‘윙, 나 일해요’ 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20년에 바리깡 등장이라니. 신선하기도 하고 코미디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반신반의하던 아버지도 어리둥절 머리를 아들의 손에 맡기고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노란 보자기로 몸 전체를 두른 아버지는 영락없이 6,70년대 봐왔던 이발소 손님이 분명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휘 둘러보고 마치 진짜 이발사인 냥 견적을 내더니 거침없이 바리깡을 휘두르며 별로 남지 않는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맘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빗으로 머리를 살살 빗어가며 머리 길이를 가늠하고 한 손으론 아버지의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가며 자세를 구부렸다가 펴가며 제법 능숙하게 아버지의 머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머리를 깎는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군대에 있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돈이 아까워서 한 번도 휴가를 나오지 않았다가 빨리 집에 가보라는 친구의 연락에야 외출을 나왔다는 이야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엄마를 만난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화장실 변기 옆에 차려진 아들의 간이 이발소였긴 하지만 사진을 찍는 나와, 아들에게 머리를 맡긴 아버지, 전문 이발사라도 된 듯 심각한 동생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까지. 이발소 안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훈풍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려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춘 순간, 카메라 속엔 젊은 시절 풍성한 흑발을 하고 가족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무 저항 없이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처럼 힘이 없는 노인의 모습만 잡힐 뿐이었다. 언제 이렇게 아버지의 모습이 변했던 걸까?

난 그동안 자르면 다시 길고 뽑히면 새로 나는 머리카락인 줄만 알고 아버지의 젊음이 마르지 않는 샘인 냥 아무 대책 없이 마시고 뽑고 퍼내고 했나 보다.


어렸을 적 우리 할아버지도 바리깡으로 머리를 잘랐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을 마당 한가운데서 며느리의 손을 빌려 바리깡으로 자르곤 했는데 어머닌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아버지를 어르고 달래며 그렇게 이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할아버지 손에 쥐어진 바리깡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이 크고 곱슬머리였던 남동생의 머리를 여자 같다며 할아버지께서 모두 밀어버린 것이었다. 무자비하게 잘려나간 동생의 머리카락은 마당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고 동자승처럼 맨질맨질 해진 남동생의 머리가 그날따라 쨍쨍한 햇빛에 반사돼서 유난히 반짝거렸었다. 오늘 이렇게 삼대가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고 밀고 손주 대까지 전해질 줄이야 생각도 못했지만 오늘 아버지와 동생의 모습은 그날 따뜻했던 봄날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 아버지의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고 내 시간 흘러가는 것만 안타까워했을 뿐 아버지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무엇을 담보로 우리의 풍요로움이 대출된 것이었는지 이제껏 생각해 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새는 동안 당신은 제대로 한번 쉬지도 못했을 것이고, 마음 편히 하고픈 일을 계획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배운 공부가 내가 떠났던 여행이 내가 했던 결혼이 아버지의 힘을 빼고 색을 바래게 한 이유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나에게 너의 죄가 뭔지 모르냐는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모라면 당연한 것이니 이렇다 저렇다 말씀은 없으시지만 아버지의 가냘퍼진 몸은 우리들에게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업보의 만년설로 녹지 않고 그대로 정지된 채 굳어지고 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혹여 아버지의 상처나 후회가 있다면 오늘 아들이 잘라주는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가 버렸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자신의 실수를 아파하지 않게 더 이상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날이 없게 말이다.


오늘 아들은 아버지의 이발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오늘 딸은 아버지의 사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하루가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혹여 이별의 순간이 오더라도 조금만 더디게 오라고 이제껏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손톱 발톱을 깎아드리고 손 꼭 잡고 오일시장 나들이도 하고 돗자리 펴고 야외에서 도시락도 까먹고 그렇게 내가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어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저물어가는 가을이 아쉽지만 제 할 일을 다 해서 아름다운 것처럼 아버지의 머리카락도 그동안 제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니 후회는 없으리라.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없으므로 하얀 머리카락이 검게 물드는 일은 없겠지만 아버지의 노년이 행복으로 물들 수 있는 그런 염색의 시간이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물어가는 초겨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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