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모임을 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 7시에 여자 셋이 모여 책 한 권을 돌아가며 읽고 있다. 일요일 오전이면 으레 늦잠을 자거나 가장 게으름을 피워야 할 시간에 눈뜨자마자 책 한 권 손에 쥐고 운전대를 잡는다. 연극배우 출신이라 감정이 풍부하고 마이크를 갖다댄 듯한 낭랑한 목소리의 여인1과 낮고 저음이지만 적당한 속도에 주위를 차분하게 만드는 여인2와 급한 성격 만큼이나 빠른 속도지만 나름 정확한 발음을 갖췄다 생각하는 여인3이 한자리에 모여 개성 넘치는 삼인 삼색의 책읽기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
때론 일주일 서로 못다한 소식을 전하느라 낭독 시간이 줄기도 하고 어느 때는 코로나에서부터 신변 잡기 문제에 대한 토의를 하느라 책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아침 커피 한 잔과 고소한 빵 한 조각의 여유는 세 여인을 잠시나마 편안한 쉼터로 내려앉게 한다.
낭독이란 것이 프로 성우처럼 동굴 목소리를 기본으로 정확한 발음과 적절한 속도로 감정까지 더해 읽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세 여인 모두 프로는 아니기에 나름 자신의 개성으로 한 권 한 권 벽돌깨기를 진행중이다.
함께 한 첫 책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였고, 두번째는 '종의 기원'이었으며 지금 막 세번째 책인 '제주어 마음 사전'을 시작했다. 낭독을 하기 전 나는 도서관에서 이십 년 가까이 독서모임을 해 왔다. 같은 책을 읽고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우연히 접한 낭독의 세계는 나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낭독법에 대한 이론도 없고 아직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한다 하는 것도 낭독의 노하우도 없지만 내 목소리에 담기는 책은 묘한 설렘과 기대를 갖게한다. 또 낭독을 하면서 느껴지는 리듬감과 속도와 음감은 마치 속사포를 쏘아대는 랩퍼가 된 듯도 하고 가끔은 판소리꾼이거나 혹은 명상자가 된듯한 착각을 하게도 만든다.
어느 독서법에선 책은 네 번을 읽어야 이해한다고 했으니 낭독은 입으로 읽고 귀로 읽고 머리로 읽는 일타삼피의 가장 적합한 독서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낭독은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정확한 발음과 말의 장단, 적당한 목소리의 높낮이와 띄어 읽기를 주의하면 될듯하고 귀로는 내 목소리의 음색과 말투와 분위기를 느끼며 읽으면 될듯하고 마음으론 책 속의 내용을 상상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며 읽으면 될듯하다. 가끔 아주 가끔 단어를 거꾸로 읽거나 긍정을 부정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읽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계속해서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나만의 당위성이 눈으로 읽은 것을 머리에서 왜곡하여 입으로 내뱉는 모양이다.한 단어를 틀렸을 뿐인데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져 있거나 자신이 틀리게 읽은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고 말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읽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페이지를 넘길 땐 작가와 내가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미주알 고주알 즐거운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그래서 낭독은 능동적이며 입체적이며 다중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낭독은 문체에 따라 호흡이 달라진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명상과 상담과 마음 다스리기가 주된 내용이어서 차분하고 여유있는 목소리와 호흡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는가 하면 '종의 기원'은 정유정 특유의 날카롭고 짧은 문장으로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서 팽팽한 신경 줄다리기가 끝나야 '휴~~'하고 한숨을 쉬며 다시 우리들이 땅 딛고 서 있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간혹 집중력을 잃어 그야말로 입으로만 읽었을 땐 내용을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훑어봐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도 했지만 공간 가득 채워지는 책의 향기는 낭독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를 풍부하게 만든다. 또 가끔은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제의 장면이 있을 땐 잠시 멈춰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물론 낭독의 흐름을 끊는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문장을 읽으면서 금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의식의 흐름을 놓치기 싫어 낭독의 시간을 정지 모드로 전환하는 것도 우리만의 낭독의 묘미였다.
낭독의 매력은 목소리도 한몫한다. 억지로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문체에 따라 문장의 길이에 따라 사건 전개에 따라 내용에 따라 남성적일 수도 있고 여성적일수도 있고 가늘고 높은 소리일 수도 있고 낮고 굵을 수도 있다. 그런 느낌은 작가의 특성을 미리 알지 못하더라도 읽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낭독에 적합한 어떤 목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듣기에 편안하고 책을 즐기기에 좋으면 그 목소리가 가장 좋은 목소리다. 가수 '요조'의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소리도 매력있고 작가 '김영하'의 꾸미지 않고 프로 같지 않는 담담함에 이끌릴 때도 있다. 오히려 목소리보다 같은 조사 하나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말의 순서가 바뀌거나 의성어 의태어가 조금만 강조되어도 낭독의 느낌이 배가 될 때도 많다.
낭독은 자연스레 청중을 의식하게 되기도 한다. 청중은 다수일 수도 있지만 적게는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낭독을 할 때는 청중이 편안하게 내용에 흡입되어 낭독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끊어 읽기와 호흡의 조절은 낭독자의 보너스다.
이렇게 '낭독'은 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같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달라지듯이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소화하는냐에 따라 공감과 감동의 깊이는 달라질 수 있다. 색다른 요리가 땡기거나 특별한 날 먹고픈 음식처럼 한번쯤 낭독의 재미와 즐거움에 빠지는 것도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거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 수업도 하고 캠프를 진행하기도 하고 부스 체험을 기획하거나 독서토론 사회를 보거나 문학기행도 다녀봤다. 하지만 그 활동의 대부분은 그 행사의 참가자들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행사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함께하는 회원들과의 조율도 신경써야 하고 행사가 끝난 뒤 반응까지도 살펴야 한다. 물론 그 나름의 보람이 있고 한층 성숙해지는 순간도 느끼지만 요즘 내가 즐기는 낭독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될 뿐더러 책을 읽고자하는 마음만 준비물로 가지고 가면 그것이 다른 회원들과도 소통하는 시간이 되니 일요일 아침 책 여행자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 밖에 없다.
'낭독'이라는 승차권을 가지고 떠나는 책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모르겠지만 낭독의 순간을 즐기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보다 진한 여행의 맛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때론 라디오의 디제이처럼 때론 아픈 배를 쓰다듬으며 자식을 재우는 엄마의 자장가처럼 나를 위해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누군가의 사랑의 밀어처럼 그렇게 '낭독'을 즐기고 싶다.